마니아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이상은의 전작은 어쩌면 조금은 난해하게도 들렸을 것이다. 물론 실험적인 사운드와 음악적 자아의 창조적 구현은 음악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기면서 다양성의 지대를 넓혀주었지만, 표현 그 자체에 무게를 두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교감의 측면은 소홀해진 부분도 없지 않았다. 이전보다 한결 이지 리스닝이 된 15집의 변화는 음악의 제1 기능인 교감의 가치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미다. 이 앨범에서 돋아나는 부담 없는 전달력과 배려는 그래서 여러 음악적 시도와 경험을 두루 거친 아티스트가 쟁취한 성숙함의 결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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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친절해졌다고 해서 작가적 개성이 무뎌졌다는 뜻은 아니다. 앨범 전반에서 풍겨지는 소박한 질감과 근접의 보이스는 홈 레코딩 작업의 결과이고, 이는 오히려 전과 다르게 정겹고 가까운 방식으로 새로워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앨범의 뼈대를 이루는 건 변함없이 이상은 식 멜로디와 언어다. 특히 이번엔 작?편곡뿐 아니라 앨범 전체를 손수 다듬어내면서 이상은이라는 작가의 지문은 제 작품에 더 내밀하고 오롯하게 새겨졌다. 화성을 쓰는 방식에 있어서도, 사운드를 연출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전형성은 없다. 이 독특성이 튀지 않고 친숙하게 어우러졌다는 점이 외려 놀랍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특유의 동화적 감성이 몽글몽글 피어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소녀 되기에만 그치지 않는 관조를 드러내며 균형감을 유지한다.
임팩트가 큰 앨범은 아니다. 그럴 만한 구간도 없다. 그보다는 화려하지 않은 담백의 온기가 말갛게 묻어난, 폼 잡지 않아 좋은 앨범이다. 곳곳에 밝음의 가치가 환하게 빛난다. 첫 귀에 느껴지는 다소 평범한 인상도 들으면 들을수록 다채로움으로 전환한다. 15집은 이상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긴 힘들지라도,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또 한 번의 방향 전환이자 앨범을 스스로 빚어내는 전방위 창작자로의 길을 향한 출발이란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지닌다. 무엇보다 음악하기가 척박한 현실에서 무려 15집까지 자기 음악 이력을 세워 나가고 있는 꿋꿋함에 박수를 보낸다. 제 음악을 오래 묵묵히 해 나가고 있다는 증표로서만으로도 < Lulu >는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의 소중한 모범이 될 만하다.
글/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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