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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보며 대성통곡 했다 -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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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근대문학의 종말’을 고한 가라타니 고진이 솔직한 건지도 모른다. 19세기, 20세기를 건너며 그려온 예술은 사실상 끝났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이응준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대답한다. 책을 쓰면 ‘그냥 재미없다’ 는 댓글이 달리고, 전 세계적으로 문학이 사망선고를 받더라도 나는 계속 쓸 거다. 이것이 20세기 작가다운 대답이다. 물론, 무턱대고 쓰겠다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그의 작품들이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작가 이응준은 또 다른 길을 찾고 있음이 틀림없다. 20세기 작가의 21세기 생존법인 셈이다.

이응준 작가는 요즘 한창 산문을 쓰고 있다. 20세기 작가로 21세기를 사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작가에게 그래도 믿을 건 글뿐인 모양이다. 이 시대와 싸워나가기 위한 벙커를 만들고 고민들을 정리해가고 있다. 그 고민을 엿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작가 이응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junbunker)를 찾아가 보자. 한 사람의 예인이 새로운 세기를 살아내는 치열한 모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에게 독자는 어떤 존재인가?

20대부터 프로작가로 활동했지만 순탄하지는 않았다. 여러 번 문학을 그만둘 뻔했는데, 그런 고비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오도 가도 못하는 절망이 있을 때, 그 분들이 내 정신적 처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말을 하면 굉장히 신기하고 용기가 많이 됐다. 나는 내 독자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은 스물여섯에 쓴 장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추억과 징표라는 이야기도 했다.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과 청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내가 청춘을 보냈던 20세기와 21세기의 이야기로 풀어볼까 한다. 나는 철들 때부터 문학을 하고 싶었고 그 뒤에 시인이 되었고 또 소설가가 되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줄 아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학에 대해 종교 같은 자세가 있다. 내가 문학을 시작했을 때 내 선생들은 시를 쓰려거든 보리밭에서 문둥이가 애기를 잡아먹고 밤 새 우는 것처럼 써라, 하고 말했다. 그게 내가 생각한 엄중한 20세기였고, 내 청춘이자 내 문학이었다. 시가 안 돼? 그럼 가서 죄를 지어라. 나는 이렇게 배웠다. 탐미주의적 문학을 했고, 문학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더 이상 이런 것들이 먹히지 않는 사회다. 문학이 가지는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나는 대중적인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동안 굉장히 어려운 일이 많았다. 문단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품들을 드라마화, 영화화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었다. 그 무렵 머릿속으로는 다 잘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에서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케이블에서 하는 <취화선>이나 <서편제>를 보며 대성통곡을 했다. 거기 나오는 장승업이나 창하는 사람들이 다 나 같았다. 한 시대가 넘어가면서 그 안에서 예인들이 겪는 실존적 처지들에 감정이입이 됐다.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 문예사적으로 문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내가 생각하던 20세기는 뭐고, 20세기 예술관은 어떤 것인지,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뭐였고, 지금 이 시대는 어떤지를 공부했다. 당연히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이 생각들을 정리해 적은 게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에 실린 작가의 말이다. 사실 김수영이 이야기했듯 시인이나 작가는 몸으로 돌파하는 부분이 있다. 결국 겪을 것은 다 겪고 지나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다음 걸음으로 나아가는 힘도 생긴다.

외국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나와서 이전에 있던 이론이 반쯤 폐기가 되었더라도 다시 책을 찍어낼 때 그 이론을 수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에 책을 재 출간하면서 일정부분 손보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을 그대로 두었다. 대신, 뒤에 작가의 말을 덧붙인 거다. 20세기에 청춘의 한복판에서 쓴 글을 21세기에 주석을 붙이는 거다. 나름대로 내 작가적 현 주소와 비전을 그려보았다. 앞으로 나는 이 현실 속에서 인문학적 투쟁을 계속해야 할 텐데 그 때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을 보면 ‘세기말의 청춘을 보낸다는 건 여러모로 독특한 경험’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독특한 경험은 무엇인가?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나서 90년대에 등단을 했다. 그때 내가 육십까지 살면 20세기에 절반을 21세기에 절반을 살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독특한 경험이란 건 그 이야기다. 그런데 농담같이 한 생각이 이제 와서 이렇게 끔찍한 화두가 될 줄 몰랐다. 나는 20세기 작가로 21세기를 살아야 하는 거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가끔 나에게 광대의 시간만 남은 건 아닌가 겁이 난다. 더 이상 예전 같은 문학적 태도가 존중 받을 수 없는 시대다. 모욕 받을 일만 많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일종의 연옥적 체험을 하게 된다.

20년 전, 인터뷰에서 지네처럼 여러 마디를 가진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나.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결국 그게 내가 된 것 같다. 주역에서도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해서 시스템을 알게 되면, 그것이 지속될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옛날에 했던 생각을 또 하지 않고 기조는 유지하되 전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 부분은 나 스스로도 자부한다. 사실 사람이 편하면 계속 그 길로 가기 때문에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 한 잘 변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해왔다.

매 작품마다 충격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꾸준한 변화에서 작가가 놓치지 않고 가지고 가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20세기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작업방식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건 앞으로도 어기지 않을 거다. 적어도 책을 쓰는 일에서만큼은. 21세기를 사는 20세기 작가로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해 내 정체성을 가지고 쓰자, 하는 거다. 최근작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면 겉은 로맨틱 코미디지만 구조는 20세기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독자들은 내가 누아르를 써도, 로맨틱코미디를 써도 그 겉모습이 다를 뿐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신명을 다한다, 가 있겠다.

최근작을 보면 이야기와 인물들이 연결되는 연작소설의 느낌이 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 할 생각인가?

연작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다. 이응준이 쓴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어떤 걸까 생각하며 썼다. 앞으로도 한동안 연작소설집을 내볼까, 하고 있다. 불교의 연기론 같은 걸 공부하며 대입도 해봤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변하는 거에 중독된 사람이다. 그렇게 살아와서 몸에 익숙해져 있다. 앞으로 한동안 연작소설을 만나게 될 거다.

시, 소설, 영화, 드라마 대본 등 다양한 작업을 하신다. 이것들이 작가 안에서 어떻게 포지셔닝 되어 있는가?

얼마 전, 시인 함성호 씨가 ‘시 쓰는 건 참 멋있는 거 같아’고 말하더라. 같은 생각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를 써서 다른 것들을 제어한다. 나눠주기도 하고 갔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다른 것들의 에너지원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하고 싶은 건 연출을 하는 거다. 영화 연출이나 대본을 쓰는 건 생계유지를 위해서도 이기도 하다. 그 부분에서는 상업예술을 해보고 싶다. 또 스타일 자체가 아주 불온한 소설도 내보고 싶다. 아주 큰 행운은 바라지 않는다. 그냥 글 쓰는 사람으로 적당한 품위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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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이응준 저 | 시공사
신하균, 이민정 주연의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동명 원작소설과 통일 이후 암울한 근미래의 서울을 누아르적 색채로 그려내 호평을 얻은 《국가의 사생활》의 작가 이응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이 다시 출간되었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은 작가 이응준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상처 같은 작품이다. 아물고 난 후에도 줄곧 어루만지게 되는. 때로는 그 흉터로 인해 내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영상화가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풍족한 미래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밑줄을 긋고 구절을 암송하는 즐거움을 주는 미덕을 지닌 보기 드문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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