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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일요일 저녁엔 - 통영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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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나오는 해산물에는 전혀 유감이 없다. 인근에서 재배되고 생산되는 농산물에도 아무런 악감정이 없다. 외려 서울에서 만날 수 없던 것들이라 고마운 마음이 더 큰 게 사실이지만, 떡볶이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나와 아내는 누구 못지않게 떡볶이를 좋아한다. 게다가 결혼하고 처음 살던 곳이 한국 떡볶이의 메카라 불리던 홍대 근처였으니 그날 기분에 따라 혹은 몸의 컨디션에 따라 다양한 떡볶이를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었지만 통영에서는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물론 한국에 떡볶이 없는 동네가 있을까마는, 문제는 맛이었다. 도대체 이곳의 떡볶이들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맛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생긴 건 분명히 빨갛고 진한 국물에 범벅이 돼 있지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십중팔구 ‘달다’는 것이다. 물론 단맛이 나는 떡볶이도 있을 수야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 게다가 그 단맛이라는 것도 깔끔한 단맛이 아니어서 매번 새롭게 찾아가는 떡볶이집에서 계산을 하고 나설 때마다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월의 마지막 일요일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아내가 길을 지나다 발견했다는 떡볶이집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낭패스러운 맛”의 떡볶이를 먹고는 잔뜩 기분이 가라앉은 채 차에 올랐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홍대 앞으로 방향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 집에 가던 길에 잠시 중앙시장에 들러 뭔가 입가심할 것을 골라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고민과 함께 그 대상을 선정했다. 전복이었다.

서울에서라면 마트에서 포장해 팔고 있는 것들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중앙시장에서는 통영 앞바다에서 양식하고 있는 활전복들이 훨씬 더 흔하다. 덕분에 단골집에서 만 원에 다섯 마리씩 하는 싱싱한 전복을 살 수 있었다. 일전에 집에 가득 쌓여 있던 냉매를 가져다드린 것을 잊지 않고 있던 사장님 내외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제주에서 올라왔다는 가리비도 넉넉히 덤으로 받았다. 금세 기분이 나아졌다.


전복을 요리하는 방법이야 다양하지만, 난 버터구이를 가장 좋아한다. 회는 씹는 맛이 우선일 뿐 전복의 진짜 맛을 즐기는 데에는 모자람이 있는 요리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전복을 손질해, 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올렸다. 이때 다진 마늘을 함께 넣고 굽는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 가리비는 그저 한 번 씻어서 오븐에 넣어 굽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우리의 일요일 저녁 ‘입가심상’이 완성됐다. 여기에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였으니 맛이야 좋은 게 당연한 일. 홍대 앞에서는 구경은커녕 풍문으로라도 그 소식을 알기 힘든 싱싱한 전복과 가리비의 야들야들한 식감과 상쾌하면서도 깊은 맛은, 떡볶이로부터 말미암은 우울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통영에서의 맛있는 떡볶이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우리가 좋아하던 홍대 앞 떡볶이와 비슷한 것을 이곳에서도 발견할 것이라는 기대를 아직 접지 않고 있다. 떡볶이 값보다 많이 나오는 기름 값을 감수하면서도 말이다. 뭐 정 안 되면 내가 직접 하나 차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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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정환정 글,사진 | 남해의봄날
한 손으로는 들 수 없는 1미터에 가까운 대구, 정감 있는 이름만큼이나 깊은 육수 맛을 내는 띠뽀리, 겨울 추위를 부드럽게 녹이는 푸딩 같은 식감의 생선 물메기, 따뜻한 남쪽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달콤한 여름 과일 비파.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깊고도 넓은 남해안의 맛의 세계와 그 매력에 풍덩 빠진 서울 부부의 좌충우돌 통영 정착기를 생생한 입담으로 만날 수 있다. 발로 뛰어 찾아낸 남해안 맛 지도는 이 책이 주는 특별한 보너스이다.

 



오늘은 이렇게 먹어볼까?

시가 있는 효재밥상
미녀들의 식탁
나를 위한 제철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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