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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집필실을 훔쳐본 꼬마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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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만남, 깃발을 올려라

여름방학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는 8월 15일 아침, 맹렬하던 햇발이 잠시 주춤하다. 방학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운 열네 명의 아이들이 파주 문학동네 사옥으로 향하는 탐험선에 올랐다. 서울 경기 곳곳에서 모인 2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이들 얼굴은 난생 처음 배를 타고 칠금도로 떠나던 『방학 탐구 생활』의 주인공 석이와 호, 경성이처럼 상기된 표정이다.

파주에 도착해 번듯한 탐험 대원 이름표를 받자마자 아이들은 같은 모둠의 대원들과 빛의 속도로 친해진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1모둠의 이름은 ‘꼬마 작가’, 그야말로 독서는 탐험이라고 생각한다는 정직한 2모둠은 ‘독서탐험대’, 유난히 활기가 넘치는 3모둠 이름은 ‘이박’으로 정해졌다. (이 씨와 박 씨만 모였기 때문이란다) 모둠 이름을 정하고 깃발을 올리는데, 책 속 일러스트를 패러디 하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얼마나 단단한 재주들이 이 아이들 안에 숨어 있을지.




작가네 집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탐험대의 첫 번째 목적지는 『책과 노니는 집』의 이영서 작가의 집필실. 2009년 출간되어 이미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과 노니는 집』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선생님은 장이를 비롯해 조선시대 책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신을 찾아온 사연을 생생히 들려 주었다.

“나는 어릴 때 공부를 잘 못했지만 정말 정말 재미있어서 눈이 반짝 뜨이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게 언제냐 하면 역사 시간이었지요. 그래서 동화를 쓰게 되었을 때, 아, 나는 역사 동화를 써야겠다 했어요. 내가 이렇게 즐거운데, 잘 못 써도 상관 없다. 잘 안 되어도 손해 볼 것 없다 생각했거든요. 내가 재미있는 만큼 독자들에게도 이 재미를 그대로 전해 주고 싶었어요.”

이 시간은 ‘2023년을 빛낸 올해의 책’ 표지를 그려 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선생님의 바람은 이루어진 듯하다. 귀를 쫑긋 모으고 이야기에 빠진 아이들의 얼굴이 말해 주고 있다.




보물을 찾아라, 책으로 놀아 보기

배부르게 점심을 먹은 대원들은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제1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방학 탐구 생활』의 김선정 작가가 길잡이로 나섰다. ‘액션 어드벤처 판타지 영화를 뛰어넘는 현실 밀착형 모험담’을 써낸 김선정 작가는 방학이 더 바쁜 도시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요즘 애들 놀 줄을 몰라.”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있고 친구가 있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선생님은 안다.

작은 그림 보고 큰 그림 찾기, 흩어진 문장 맞추기, 30조각 그림 맞추기를 순식간에 풀어내는 아이들의 실력이 놀랍다. 다 맞추고 앞으로 뛰어나오는 속도는 더욱 놀라웠다. 대원들이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준 시간이었다. 김선정 선생님은 “내 책이 만든 이 과열 경쟁 양상이 좀 슬픈데, 재미있어 죽겠다는 너희들 모습을 보니 정말 행복해.”하며 웃었다. 책 안에 숨겨진 보물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서로를 긍정하는 되는 환한 웃음일 것이다.




시 쓰는 개미와 베짱이, 동시가 어려워?

보물찾기 다음은 곤충채집? 이 아니고, 동시집 『어이 없는 놈』을 펴낸 김개미 시인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선생님의 첫 마디는 “친절한 선생님을 원해? 건방진 선생님을 원해?”였고, 놀랍게도 아이들은 건방진 선생님을 선택했다. 역시 남달리 용감한 탐험대원들 답다. 선생님이 칠판에 붙여 둔 시어 카드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며 아이들은 동시와 놀았다. 자유롭고 싶다고 느껴 본 순간이 언제였냐고 선생님이 묻자 대원 1은 명절 때 엄마가 음식을 나르라고 시켜서 가뜩이나 힘들었는데, 나르다가 넘어져서 음식을 쏟는 바람에 벌로 방에 갇혔을 때라고 답했다. 대원2는 숙제 하기 싫을 때, 대원 3은 합창부에서 노래 연습을 너무 오래 시켰을 때, 대원4는 강당에서 혼자 오카리나를 불었는데 들판을 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을 때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생할 수가. 아이들이 쓴 동시들은 놀라웠다. 허무와 반전의 매력이 돋보이는 「거꾸로 엄마」, 슬픔과 자조의 미학을 담은 「쓸데없이」, 발랄한 각운에 당찬 메시지를 담은 「잔소리」 세 편을 소개한다.
거꾸로 엄마_최연준

거꾸로 엄마가 있으면 어떨까
공부할 때 딴생각 해라
냄새 나게 놀고 와라
청개구리처럼 대답해라
맙소사, 차라리 잔소리가 낫겠다


쓸데없이_정하은

쓸데없이 학원 다닌다
점수도 오르지 않는데

더 놀고 싶은데
더 자고 싶은데
금 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진짜 쓸데없이 학원 다닌다
쓸데없다


잔소리_박서연

엄마는 잔소리쟁이야
일어나면 양치하라고 왱왱
세수하라고 왱왱
밥 먹으라고 왱왱

나도 알아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엄마는 여왕이야

나한테 숙제 해라 왱왱
문제집 해라 왱왱
책 읽어라 왱왱

엄마는 간섭의 여왕이야

나도 알아요
제가 할 일 알아요
나 좀 가만히 두세요



시간극장,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법

탐험대가 들른 마지막 장소는 멋진 극장이다. 『시간 가게』를 쓴 이나영 작가와 함께 책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보았다. 오로지 일등이 되기 위해 시간을 사기로 결정했던 윤아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바라던 대로 전교 1등을 했지만 윤아는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 함께 고민해 보았다. 대원들은 스스로 작가가 되어 이야기를 바꾸어 써 보기도 했다. 내가 이야기 속 할아버지라면, 십 분의 시간을 사는 대신 무엇을 요구할까 하는 물음에는 머리카락, 살(!), 목소리, 미래의 시간 십 분 등 다양한 것들이 등장했다.




뜻밖의 소식 ‘엄마의 편지’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어 갈 무렵, 뜻밖의 소식이 도착했다. 대원들이 책 속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함께 온 부모님은 따로 강의를 듣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귀엽고 선한 웃음이 꼭 닮은 삼남매의 어머니가 쑥스럽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는다. “늘 동생들 잘 챙겨 주는 의젓한 큰아들 래곤이, 장난기 많지만 동생에게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는 우리 집 요리사 래원이, 착하고 예쁜 막내 래인이, 언제나 서로 친구처럼 기대어 살아가길 바란다. 더불어 책이라는 과묵한 친구와도 깊이 사귀어 보길.”

책에 눌리지도 말고, 책에 치이지도 말고, 책을 깔보지도 말고, 책과 진실한 우정을 나누는 대원들이 되길. 오늘의 탐험을 준비한 문학동네의 바람이다. 우리 대원들의 다음 여름방학은 이번 방학보다 조금 더 신 났으면 좋겠다. 문학동네가 뱃고동을 울리며 힘껏 응원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아이에게 회복력과 인내력을 길러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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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시스템이 작동을 하여 코르티솔이 생산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갑작스럽게 덥치거나 자기가 통제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면 뇌는 스트레스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을 힘들어 하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훨씬 많은 코르티솔이 생성된다. 아이들 중 낯선 상황이나 사람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까다롭고 내성적인 기질의 아이들이 있는데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에 의하면 이 아이들은 코르티솔이 더 높을 뿐 아니라 어려움이 닥치거나 부정적인 상황에 부딪혔을 때 회복력이나 인내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의 코르티솔을 높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부모들이 흔하게 하는 ‘소리 지르기’도 체벌만큼 나쁘다고 긍정육아 학자인 에이미 맥크레디는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때리는 것은 절대 안 되지만 소리 지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연구에 따르면, ‘소리 지르기’도 아이의 안정감과 자존감에 심한 손상을 입힌다.

아이들은 자기중심성이 강해서 모든 사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다. 특히 부모의 갈등은 자신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육아일치는 중요하다. 아이에게 서로의 육아방식을 고집하여 갈등하다가는 아이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의 양육개입이 아무리 좋다고 한더라도 계속 엄마와 갈등하고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면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도파민 사회에서의 회복탄력성

현대의 경쟁적인 인간사회는 높은 도파민 활성을 지닌 성격을 선호한다. 즉, 지능이 높고, 목표 지향적이며, 경쟁적이고, 도전적이고, 탐구력이 강한 사람을 요구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효율성을 중시하고, 경쟁을 통한 발전하며,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자신의 덕목으로 삼는다.

그러나 뇌의 도파민시스템은 끊임없이 비교우위에 집착하고, 상대적인 성취감을 추구할 위험이 있다. 도파민시스템에 의한 몰입은 맹목적이어서 큰 성취를 이루게 할 수 있지만 현실과 상황에 집착해 빅픽처를 그리거나 주변을 차분히 둘러보지는 못한다. 또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심화되며 상대적인 성취 후에는 정서적 허탈감을 겪기도 한다. 도파민 시스템은 아이들에게 단기적인 성취를 이루게 하고 학습동기를 일으키는데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인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아이의 뇌에는 이러한 상대적인 성취감보다는 장기적인 성취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세로토닌시스템이 있다. 중뇌의 봉선핵에서 생성된 세로토닌은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 등 대뇌의 전체 피질과 소뇌, 척수의 전 영역 걸쳐 분포한다. 세로토닌 신경회로는 이렇게 뇌 전역에 분포하면서 뇌의 전반적인 조절기능을 담당한다. 세로토닌은 과량의 도파민으로 인한 내적 스트레스와 과도한 경쟁심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아드레날린 폭주와 그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폭력성과 충동성, 공격성을 조절한다. 또한 게임중독과 같이 지나치게 몰두할 경우 위험을 초래하는 도파민의 과활성을 억제한다. 세로토닌은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의 전구체로써 아이의 수면주기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밝고 활발하여야할 아이를 피로하고 우울하게 한다. 세로토닌은 뇌의 가소성을 활성화시켜 아이들을 낙천적이고 여유로우며 탄성회복력이 높은 아이로 자라게 한다.


탄성회복력이 있는 아이들

탄성회복력이 있는 아이들은 사회성이 좋고, 부모와의 유대감이 강하며, 도움을 얻기 위해 모임을 만들거나 모임에 참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를 알고, 자신의 삶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나눌 줄도 알기 때문에 역경이 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탄성회복력이 있는 아이들은 자기주도성이 강하다. 이들은 걱정스럽거나 힘겨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자신이 할 일이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신을 달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스스로 찾아낸다. 부모에게 자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표현할 수 있으며, 아끼는 봉제 인형을 꼭 껴안는 등 마음을 달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상황이 뜻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리를 한다.

탄성회볼격이 높은 아이들에게 걱정은 해결하면 그만인 개별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탈진시키거나 감정을 압도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일은 좀체로 없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스트레스 상황조차도 쉽게 놀이로 바꿔버린다.

탄성회복력이 높은 아이를 위한 지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칭찬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아이가 자신의 길을 가다보면 부딪히는 일도 많고, 그 와중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때 섣부른 칭찬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부모는 아이에게 맞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주고 격려하여야 한다. 나만의 길에서는 역경은 다소 있을지 몰라도 워낙에 내가 좋아하는 일인 만큼 역경을 견뎌낼 마음도 스스로 가지게 될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경험하게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본인이 가야 할 길을 직접 만들어가도록 격려하자. 시행착오가 있을 때 부모의 위로가 필요하다. 아이가 변할 필요가 있을 때도 조급해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적응하도록 위로해주자. 외형적인 성적 향상을 지나치게 강제하기보다는 빅픽처를 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때 세로토닌이 증가한다.

둘째, 복식호흡과 명상을 하라.

도파민이 차지하고 있던 뇌에 세로토닌이 들어서게 하려면 감각에 끌려다니지 말고 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 복식호흡과 명상이다. 아이의 뇌에서는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에 기쁨, 쾌감, 성취감에 관여하는 도파민이 방출되는데 아이는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자 집착한다. 복식호흡이나 명상을 하면 외부로부터 들어오던 오감자극으로부터 벗어나, 세로토닌이 방출되고 뇌파가 안정된다. 복식 호흡을 할 때는 생각을 복부에 집중하고 숨을 깊게 쉬어 배까지 내려가게 한 후 밖으로 내쉬는데, 숨을 들이마실 때는 배가 나오게 하고 내쉴 때는 배가 들어가게 해야 한다. 아리타 교수가 아이들에게 복식호흡을 하게 한 뒤 뇌파를 측정한 결과, 깨어있을 때의 뇌파인 베타파에서 서서히 알파파가 나오는 것이 관찰하였다. 이는 대뇌피질의 과민한 활동이 억제돼 이런 저런 생각을 쉬고 마음이 안정돼 간다는 의미이다. 명상을 할 때는 눈을 감자. 그 순간 눈앞에 우주가 펼쳐진다고, 눈꺼풀이 닫히면서 생긴 어둠을 우주 공간이라고 상상하자. 그 깊은 어둠을 바라보며 조용히 코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느낀다. 그러는 사이 뇌파는 안정되고 뇌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며 아이는 편안한 상태가 된다.

셋째, 세로토닌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라.

세로토닌시스템은 다른 신경전달물질보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세로토닌은 음식물 섭취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이미 뇌 안에 충분히 존재한다. 따라서 음식을 통해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의 양을 증가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로토닌은 뇌 안의 절대량이 필요한 양보다 늘 부족한 상태이며 음식물을 통한 공급에 의해서 부족한 양을 채울 수 있다. 세로토닌을 높이려면 필수아미노산 중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의 전구체이기에 이것이 함유된 음식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트립토판은 주로 견과류와 곡식류에 많은데 호두, 들깨, 검은 참깨, 현미, 감자 등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또한 청국장과 치즈같은 발효식품, 우유와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 및 바나나 등에도 풍부하므로 이를 같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이현 “소설가의 유일한 장점? 놀고 있어도 놀고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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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 온 작가 정이현의 소설이 출간되었다.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큰 사랑을 받은 장편소설『달콤한 나의 도시』로 그녀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덕분에 가볍고 섬세한 터치, 세련된 감수성 등으로 정이현 작가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등단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부터 그녀는 한 사회가 인간과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예리한 시선을 유지해 왔다. 신작 『안녕, 내 모든 것』은 ‘김정일이 죽은’ 바로 그 시기에 시작된다. 9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주인공들이 이별해야 했던 ‘모든 것들’은 우리 사회가 ‘무너진 삼풍백화점’을 짊어지고 바쁘게 통과해온 시간들과 맞닿아 있다. 이날 향긋한 북살롱에서는 거짓말 같이 달콤하고 아릿한 청춘의 이야기가 독자들을 만났다.




허희 문학평론가(사회) : 책이 출간 된지 한 달 정도 지났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

정이현 :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고 지냈다. 작품 하나와 일 년 정도 깊게 사귀다 해어진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이런 우울함을 잘 모르고 나가서 놀거나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그런데 십 년 차가 넘으니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었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작품을 낸 동년배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도 그렇다고 했다. 슬퍼서 그런 것 같다. 자기 손으로 만든 세계를 자기 손으로 부수고 이별하는 시간이라 그렇다. 말하자면, 지금은 애도의 기간이다. 연애가 끝나면 지금까지 시간을 반추하고 기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누군가와 뜨겁게 사랑을 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진 느낌, 혹은 한 때 친했지만 시간이 지나 이제는 헤어진 사이 같다.

허희 : 소설 속 주인공들을 고등학생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정이현 : 그 시기가 사람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가장 높은 시기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10대가 좁은 교실에서 갇혀 시간을 보낸다. 언제나 그 풍경을 써보고 싶었다. 도시락 통에 눌려 있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간들 말이다.

허희 : 소설 속 세 인물들은 1997년에 스무 살이 된다. IMF와도 마주치는 시기다. 풍요로운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 자들이 성인이 되고 몰락을 맞는 것으로 읽힌다.

정이현 : 물론, 시기는 의도적이었다. 그렇게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거다.

허희 : 요즘, 청춘에 대한 담론이 많다. 이 책을 보면 작가가 바라보는 청춘이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정이현 : 청춘은 생물학적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마음에 예민한 각이 서 있을 때가 청춘인 것 같다. 마음에 굳은살이 박히면 나이가 드는 듯하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저 삶에 다른 여지가 끼어들면 그때부터 청춘에서 멀어지는 게 아닐까. 언제나 청춘인 사람은 멋지지만 닮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일상인으로 ‘먹고사니즘’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팟캐스트에서 청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미안하다고 대답했다. 멘토로 한 마디 해달라는 말은 무섭다. 멘토라는 말이 그렇다. 나 역시 여전히 불완전하고 미숙하다. 어떻게 감히 충고를 하겠나. 70년대 초반 생으로 겪은 청춘은 IMF 이전 시대였다. 현재 젊은 친구들과는 경제적 조건이 너무 다르다. 거기에는 어른인 내 책임도 있는 것 같다.

허희 : 멘토가 싫다고 하셨지만 정이현 작가를 롤 모델로 삼는 여성들이 많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이후로 그런 현상이 생긴 것 같다. 젊은 여성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정이현 : 이런 말을 들으면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그게 10년 전 작품인데 아직도 달라진 게 없구나 싶어서다. 시간이 지나도 20대 여성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유리를 닮은 여자들이 한국을 유령처럼 걸어나고 있다면 그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다른 식으로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였다. 20대 여성들이 나이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스물넷이나 스물 여덞이나 똑같다. 내가 처음 소설을 쓴 나이가 스물아홉이다. 인생을 몇 번이나 바꿀 수 있는 나이인데 세상이 정한 커트라인에 너무 매이는 것 같다.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는 것, 그래도 계속해서 나는 나라는 것을 모두 기억해주면 좋겠다.

허희 :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고 이 작가는 결혼을 안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 소설을 쓰시고 어떻게 결혼을 하셨나?

정이현 : 뭐, 그래서인지 결혼을 많이 늦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 정이현과 개인으로서의 내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예민한 시선이야 없지 않겠지만 생활인의 모습이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요즘, 일상인으로 사는 시간이 많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한테 속상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언젠가 작품에 힘을 줄 거라 믿으며 오늘도 열심히 아이를 보고 있다.

허희 : 육아와 연재를 병행하기 힘드셨을 것 같다.

정이현 : 계간 연재는 처음이다. 세 달 정도 시간이 있는데 한 달 정도만 일하게 된다. 급하게 마감을 하다 보니 몸이 너무 힘들다. 여유시간이 없으니 더욱 그랬다. 덕분에 작업실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글만 썼다.

허희 : 소설 속 인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

정이현 : 고모가 제일 좋다. 제일 인간적이기도 하고 불완전하고 깨지기 쉬운 사람이라 더 매력적인 거 같다. 나주에 고모의 이야기만 따로 떼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개인적으로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지혜다. 부모에게 냉소적이고 반항하고 싶지만 부모를 실망시킬까 불안해하는 부분이 닮았다.

허희 : 어린 시절 약간의 틱 증후군이 있었다고 들었다.

정이현 : 장애라고 호명하니까 놀랍게 들리는데, 사실 그때는 틱이라는 말도 몰랐다. 눈을 깜빡이고 말하기 전에 음음, 소리를 내는 버릇이 있었다. 열살 쯤이었다. 사람들이 눈 좀 깜빡이지마, 하면 그때부터 심하게 깜빡였다. 엄마 친구 분 소개로 병원에 갔다. 거기서 준모한테 한 것과 같은 질문을 들었다. 싫어요, 하고 대답했더니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었다. 그래서 독방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독방을 쓰게 됐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돌아보면 처음으로 세상과 자아의 불안, 긴장감을 표현한 것 같다. 마음으로 다독이지 못하니까 그렇게 표현된 거다. 준모도 마찬가지다. 연약한 영혼을 가진 아이다. 다른 사람들은 흘려 보내지만, 이 아이는 그걸 못한다. 소설 속에서 가장 미안한 인물이다.

허희 : 개인적으로는 ‘충동의 논리’로 작품을 읽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말하는데, 이 책의 인물들이 그렇다. 준모는 욕을 하기 싫지만 해야 하고, 세미는 조부모와 살고 싶지 않지만 살아야 하고, 지혜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한다. 청소년이라는 시기는 욕망보다 충동의 영역에 발을 딛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정이현 작가가 작품의 한 구절을 낭독했다.




모두들 할머니가 제 발로 집을 나갔다고 믿었다. 집 안의 금품이 없어지지도 않았고, 납치범의 협박전화 같은 것도 전혀 걸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셔서.”
아빠가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들으면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잘못이야. 이 집을 떠나야 하는 걸 못 받아들이신 거야.”
고모는 할머니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이사를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약서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건 줄 아느냐고 고모부가 지청구를 주었다. 고모부가 가출신고와 실정신고의 차이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실종신고 후에 오 년이 지나면 사망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아빠는 재빨리 실종신고를 했다. 어쩐 일인지 그들은 갑자기 손발이 척척 맞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서류를 정리하는 시점이 닥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이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할머니에게 비밀을 선물한 대가로, 우리 셋은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우리만이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는 친구들과 꼭 나누고 싶었는지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비밀은 지켜졌고, 나와 지혜와 준모는 다시 모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다.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인 거였다. 준모도 지혜도 어딘가에 혼자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아무리 우스운 영화를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 원래 다 그런 거라고들 말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 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


낭독을 마친 작가는 이 구절을 쓰던 때를 회상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이 구절은 다른 부분에 비해 먼저 쓰였다고 했다. 압박 때문에 일은 되지 않고 잠은 계속 부족해서 날카로워진 무렵이었다. 다음날 원고를 넘기기로 했지만 제대로 쓰지 못한 채로 그냥 잠이 들었다. 그러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는데 두 시간 동안 거짓말처럼 술술 써졌다는 거다. 작가는 ‘전문용어로 그분이 오신 것’ 이라며 웃었다.




독자와의 대화

준모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길에서 준모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정말 준모인가?

정말 준모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준모가 그린란드에 있을 수도, 어딘가에서 운전을 할 수도 있다. 나도 알 수 없다. 사실 준모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결국, 물음표로 남기기로 했다. 그게 준모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하는 기분이었다. 그냥 준모를 떠올리면 씩, 웃을 수 있는 정도로 두고 싶었다.

지혜가 기억력에 대해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초능력을 의심할 것 같아 일부러 틀린 답을 쓴다고 하는데 그것도 이상하고 나중에 할머니 묻은 곳을 찾지 못한 것도 이상하다.

지혜가 기억력이 좋다는 이야기는 지혜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 시절 여러 가지 마음들이 얽혀 나 사실은 대단해, 하고 초능력을 지어낸 걸 수도 있다. 준모와 세미는 그런 초능력을 유일하게 믿어준 친구다. 그래서 셋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지혜는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는지 모른다. 상상에서 시작된 걸 수도 있다. 그저 조금 기억력이 좋은 걸로도 충분히 초능력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나는 한때, 세상의 전화번호를 모두 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말하면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나는 엄청난 일이라 생각하는데 들어주질 않는 거다. 그러다 누군가 대단하다 하고 말해주었는데, 그 사람과 사귀었다. 지혜의 기억력도 그런 게 아닐까?

소설 속에 판타지가 없다. 현실적이어서 너무 아플 때가 있다.

세상에 다양한 콘텐츠가 있는 것 같다. 판타지를 다루는 것은 드라마 등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싶은 마음이다. 카카오 88% 초콜릿 같은 거다.

작품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

일단 시작한다. 안되면 남의 걸 읽고 그걸 컴퓨터에 써본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이건 아주 급할 때 쓰는 방법이다. 보통 급할 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여행 책 같이 아무 상관없는 걸 읽거나 홍대 앞을 배회한다. 소설가의 유일한 장점은 놀고 있어도 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작품구상을 하는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10년 전,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20대 여성에게 강요된 환상과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던 정이현 작가가 이번에는 90년대를 관통한 청춘의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소설 『안녕, 내 모든 것』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는 과거에 대한 쓸쓸하고도 아련한 이야기다. 독자들은 그녀가 전해주는 청춘의 이상한 에너지, 열렬함과 아스라함을 빌어 잠시나마 자신의 과거에 다녀온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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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정이현 저 | 창비
1994년,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열일곱살 세 친구가 있다.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채 부자인 조부모의 집에 사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기고 있는 세미, 통제할 수 없이 반복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뚜렛 증후군에 시달리는 준모,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비범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지혜. 셋은 서로를 감싸주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지켜왔지만, 또한 서로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상처와 비밀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들이 보내는 힘겨운 십대의 마지막 시절,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누는 커다란 비밀이, 그들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준익 감독, 가장 아픈 소재지만 다룰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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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이 10월 2일 개봉을 확정한 영화<소원>으로 영화 팬들을 찾아온다. <라디오 스타> <왕의 남자>등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했던 이준익 감독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또 하나의 전국민 관람 영화의 탄생을 예고했다. 


이준익 감독은 지난 2005년 조선시대 궁중광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왕의 남자>를 통해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인간사의 희로애락과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사람과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담아내며 1,230만 관객을 동원,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이어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등의 작품을 통해 현실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사람을 향한 세심하고 온기 어린 시선으로 공감을 자아냈다. <평양성>이후 상업영화 연출을 고사했던 이준익 감독을 복귀시킨 작품은 바로 <소원>이다. 이준익 감독이 연출을 결심한 이유는 시나리오의 공이 가장 컸다. 성폭행을 소재로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을 느끼면서 울컥한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새롭게 데뷔하는 각오로 임했다”는 소감을 전한 이준익 감독은 “끔찍한 현실이지만 지금도 버젓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폭행, 특히 아동 성폭행은 이 사회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렬하고 가장 마음 아픈 상처”라면서 “너무 아파서 들여다보기조차 힘든 소재인만큼 가짜가 아닌 진짜 같은 마음과 감정으로 임하려고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지울 수 없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가족들이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는 과정을 진실되게 담아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불행과 절망의 끝에서 희망이 시작되는 휴먼 드라마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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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원>은 가장 아픈 곳에서 피어난 가장 따뜻한 감동을 담아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소원이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설경구와 엄지원은 각각 소원이의 아빠 ‘동훈’과 엄마 ‘미희’ 역을 맡아 세상의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는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김해숙, 김상호, 라미란 등 검증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현실적인 캐릭터를 드라마틱한 감정으로 열연해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루어냈다. 특히 촬영 당시 연기를 지시하는 이준익 감독은 물론 연기하는 배우들 모두 눈물이 벅차올라 촬영을 지속하지 못했을 정도로 특별한 진심을 담았다. 또한 이미 촬영 단계에서부터 이제껏 어디에서도 본 적 없었던 천재 배우의 등장이라는 극찬을 받은 아역 배우 이레 양이 ‘소원’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난다. 세상의 모든 피해자와 가족들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의 마음, 그리고 부디 잘 살기를 바라는 바람을 담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더해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건넬 것이다. 10월 2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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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를 종합예체능인이라 부른다, 의 송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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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황당무계 코미디 <구텐버그>

송용진이 지은 <구텐버그>의 장르명이다. 작가인 더그와 작곡가인 버드가 자신들의 역작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기 위해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을 모아놓고 펼치는 1인 10역의 연기, 그 자체가 바로 황당무계 코믹 스토리란 얘기다. 2006 뉴욕뮤지컬페스티벌 최우수 뮤지컬 대본 부문과 독특한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 것만 봐도 뭔가 수상쩍다. 한국 공연은 전 세계 다섯 번째, 그 무대를 책임지는 건 단 네 남자. 그 가운데 송용진이 있다.

“저는 버드라는 작곡가 역할인데요. 더그와 버드 모두 꿈이 있어요. 둘이 뮤지컬을 만든다는 건데 그게 바로 <구텐버그>라는 대극장 뮤지컬이죠. 사실 좀 덜 떨어진 친구들이에요. 그들이 만든 뮤지컬이 ‘대단히’ 좋지 않거든요. 하지만 둘에게는 그 어떤 작품보다 대단한 작품이죠. ‘지저스, 위키드가 구텐버그보다 못하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재미없거든요. 모자람이 있는 친구들이지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겠다는 꿈을 가지고 물불 안 가리죠.”

버드와 더그에겐 돈이 없다. 그래서 무대를 오를 배우도 구하지 못했다. 그게 바로 두 사람이 20개 넘는 역할을 하는 이유다.

“멀티맨보다 더 분주하죠. 합창까지 모자로 표현해요. 모자 10개를 바꿔 쓰면서 목소리나 안무를 바꿔가면서 연기하거든요. 저는 모자로 바꿔 쓰는 역할을 하면서 버드라는 캐릭터도 연기해야 하는 거고요. 그런데 문제는 버드라는 역할 자체가 작곡가라서 연기를 그리 잘하지 못해요. 버드가 하는 역할들은 그래서 소위 ‘니마이’ 연기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어설픈 연기를 하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연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의 연기를 재미있게 표현해야 하니까요.”

대단치 않은 대극장용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겠다는 버드와 더그의 열 가지 어설픈 연기,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


소극장 뮤지컬에도 인터미션이?

관객이 보는 버드와 더그의 이야기는 중소극장에서 펼쳐지는 뮤지컬이지만, 그들이 만든 뮤지컬은 대극장용 뮤지컬. 그래서 그들은 당당히 인터미션을 선포한다!

“1막이 끝나면 프로듀서와 이걸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가스펠이나 지저스, 위키드, 아가씨와 건달들 다 2막은 재미없다. 하지만 우리의 2막은 그렇지 않다, 기대하시라’ 그런데 얘들 2막도 별로 재미없어요.”

대략 <구텐버그>의 웃음 포인트를 짚으셨는지? 황당무계하지만 그래서 자꾸 시선을 잡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대단치 않은’ 작품을 만든 두 남자의 ‘대단한’ 활약은 사사로운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등퇴장이 없는 작품이에요. 인터미션에도 저희는 쉬지 않아요. 관객들이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저희는 직접 무대 위에 나와서 세팅하고 있을 거예요. 실제로 마이크에 문제가 생겨도 저희가 직접 해결해야 해요. 그래서 그런 돌발 상황까지 다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미션까지 미장센으로 활용한 영리한 작품 <구텐버그>, 뮤지컬 무대에서 굳은 살 박혀온 송용진에게도 새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싶었죠. 원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땐 까만 커텐 앞에 모자가 있는 테이블 하나, 종이박스 몇 개만 놓고 공연을 해요. 기본 설정이 그래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티켓 값에 그런 무대로 공연하면 욕먹죠. 저는 더 빈곤한 무대에서 해야 작품의 매력이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안타깝긴 해요.”

그래서 다른 작품의 소품 등이 설치된 무대에 버드와 더그가 서는 것으로 한국 무대는 좀 ‘화려’해졌다. 송용진의 바람은 그 언젠가 원작에 가깝게 아무것도 없는 작은 소극장의 정말 ‘빈곤한’ 무대에서 버드와 더그의 초라한 ‘대극장 공연’을 펼치고 싶다는 것. 시즌별로 찾아오는 뮤지컬 대열에 선다면 아마 볼 수 있을 송용진의 ‘빈곤한’ <구텐버그>, 기대하시라.


“애드리브하면 때린다고 말했어요”

라이센스 작품이지만 기본 대본과 음악 말곤 닮은 점이 별로 없단다. 전형적인 미국식 코미디로는 한국에서 승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지만 연습 현장에서 속출한 아이디어들로 <구텐버그>는 거의 창작에 가까워졌다.

“연출과 배우가 연습하면서 거의 논쟁에 가까운 의견을 내놓거든요. 그럼 우선 한 번 연기를 해보자, 보고 나서 정하자 하다가 하면서 웃음이 터져요. 그래서 하루 종일 웃다가 가죠.”

기자 : 누가 제일 웃겨요?
송용진 : 상훈이가 제일 웃겨요.
기자 : 그럼 아이디어는 누가 제일 많이 내요?
송용진 : 상훈이가 제일 많이 내요.

물론 당사자가 자신의 씬에서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지만 뮤지컬계 코믹연기의 달인인 정상훈 덕에 연습현장은 웃음바다라고.

“이번에 <구텐버그>로 입봉한 조연출이 한 말이 있어요.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의 스탭들이 그 친구 동기들인데 그 스탭들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구텐버그>는 연습을 어떻게 하길래 그? 친구가 그렇게 즐겁게 조연출 생활을 하느냐고. 그 친구한테 ‘힘들지?’ 하고 전화했더니 ‘아니, 나는 연습실 가는 게 너무 행복해. 뭐가 힘들어? 나는 앉아서 매일 웃는 거밖에 하는 게 없어.’ 그러더라는 거죠.”

팍팍한 조연출 생활을 웃으며 시작할 수 있는 비결, <구텐버그>의 송용진, 정상훈, 정원영, 장현덕 네 남자의 힘이지 싶다. 그런데 송용진은 바로 그 웃음 때문에 지금 걱정이다.

“진짜 걱정돼요. 제가 가장 걱정되는 사람은 정상훈밖에 없어요. 그래서 매일 얘기해요. ‘너 진짜 무대 위에서 애드리브하면 때릴 거’라고. 애드리브를 누가 하면 받아쳐야 하고 그러다 산으로 가거든요. 그래서 약속까지 받았지만...모르죠. 무대 위에서는 관객들 반응이 없으면 뭐라도 막 서로 하려고 하거든요.”

1열에 계신 분들, 혹시 이 네 남자 중 누군가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면 다음 애드리브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자.

이보다 더한 에너자이저는 본 일이 없다

머리를 곱게 다듬고 와서만은 아닌 듯 보였다. <마마돈크라이> 때보다 훨씬 살이 빠져 보이는 송용진. 작품 준비하는 데 그만큼의 체력소모가 컸던 걸까 싶었다.

“그 때보다 3, 4kg 더 빠졌어요. 일부러 뺀 건 아니었는데 이 공연을 하면 이제 저절로 더 빠질 것 같아요. 콤비로 둘이 쉴 새 없이 얘기하고 연기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 것만 연기하면 되는 게 아니라 상대 역할의 대사까지 다 외워야 해요. 그래야 템포감이 안 떨어지고 합이 맞거든요.”

운동을 좋아한다는 송용진, <마마 돈 크라이>에서 유독 발걸음이 가벼웠던 이유가 있었다.

“저는 권투를 좋아하고요. 축구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격한 운동을 좋아해서요. 체육관 관장님이 프로 데뷔하자고도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오랫동안 즐기면서 하고 싶거든요. 나이도 많고요. 생활체육인대회에서 40대부 챔피언을 노려보겠다고 말했죠. 요즘은 뮤지컬 때문에 1주일에 2번 정도밖에 못 가요. 못 가면 밤에 로드웍이라도 해요.”

권투생활 3년차, 5전3승2패의 전적, 생활체육인대회에서 우승경력도 가지고 있다. 서핑이 좋아 제주도에 집과 차를 마련해둘까도 생각하는 이 남자, 이쯤 되면 체육인에 가까워보이는데...

“축구를 하러 가면 20대 동생들이 그래요.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형 뛰는 거 보면 미친개 같아요.’”

용진 씨, 이 대목에서 기자가 박장대소했던 건 꼭 공감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가수? 뮤지컬 배우?

송용진이라는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뮤지컬배우, 가수’라고 나온다. 하지만 그는 가수가 먼저였다. 록밴드 쿠바의 보컬 송용진, 그렇다고 로커로 출발해 뮤지컬 배우로 유명세를 얻으니 다시 홍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저는 두 가지 일을 같이 하고 있는 거죠. 뮤지컬로 돈을 더 잘 벌고 좀 더 유명한 것뿐이지 두 가지 중에 저울질을 해본 적은 없어요. 뮤지컬은 상업적인 예술이잖아요. 음악에서만큼은 타협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새벽 한시에도 홍대 라이브홀에서 하고 싶은 노래를 하는 것뿐이다. 그게 좋은 관객은 즐기면 그뿐이고.

“제 성향 자체가 메이저가 아니기 때문에 가장 메이저적인 활동이 뮤지컬이거든요. 제가 인디 레이블 내고 음악활동 고집 안 했으면 집 샀어요.”

지금은 그가 직접 제작, 연출, 작곡, 연기를 도맡아 했던 뮤지컬 <노래불러주는 남자>의 넘버들로 음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과거 열악한 지하 연습실에서 음악 하던 남자의 지상 목표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 그리고 지금은 대형 무대에서 뛰어다니면서도 아직 목표가 많다, 그리고 뚜렷하다.

그는 자신의 인디 레이블 회사 ‘음악창작단 해적’이 언젠가 ‘예술창작단 해적’으로 바뀌기를 고대한다. 앤디워홀의 팩토리라는 공간처럼 음악도 만들고 공연도 하고 미술도 하는 실험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어쩌면 그의 공간 ‘해적’ 안에는 링도 하나 가설되는 게 아닐지... 그의 꿈을 묻기도 전에 그는 이미 세 번째 뮤지컬에 대한 구상 중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또 다른 꿈, 장편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 이미 캠코더를 손에 들었다. 뮤지컬 배우로, 제작자로, 록가수로, 영화감독으로, 그리고 복싱 챔피언까지. 그의 시간이 유보되지 않는 명백한 이유들이다. 아울러 그의 빛나는 40대가 더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게으른 여자를 위한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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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설계하면서 주인의 취향이나 성격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부분은 바로 부엌입니다. 주방이나 부엌 다 같은 말입니다. 한자어로 된 주방이라는 말이 어쩐지 더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인지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는 모양인데, 저는 부엌이란 말이 더 익숙합니다. 음식 하는 일을 즐기지만 그 과정을 남들이 보는 걸 싫어한다고 부엌에 꼭 벽을 치고 가려달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식구들과 대화도 나누고 TV도 함께 볼 수 있도록 개방된 아일랜드형 부엌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은 후자가 대세입니다.

집을 짓기 위해 오랜 시간 설계하고, 오랜 시간 검토와 토론을 하고, 지난한 행정절차와 시공자 선정을 마치고 공사에 들어가려 하면, 다 되었습니다, 하는 순간 꼭 불거지는 문제가 부엌에 관련된 것입니다. 일반적인 가구와 집의 구성은 오랜 시간 협의하고 설계하고 시공한 대로 크게 방향이 바뀌지 않고 진행되는데, 부엌의 경우 많은 부분이 바뀝니다. 단순히 가구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창문의 모양도 바뀌고 동선도 바뀌게 됩니다. 식기세척기나 오븐, 김치냉장고 같은 기본적인 가전제품이 늘어나 생각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게 되고, 특히 부엌 가구의 대표 격인 싱크대가 가장 두려운 복병입니다.

싱크대는 문자 그대로 물을 받아 그릇을 씻거나 야채를 씻는, 대부분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우묵한 함지가 달린 부엌용 작업대를 이릅니다. 그런데 그 싱크대에 이상한 기호와 이상한 의미와 이상한 상징이 부여되었습니다. 어떤 대기업의 제품이 싱크대의 대명사가 되어, 집에 그 브랜드 싱크대를 넣고 싶어 하는 것이 제가 만난 많은 주부들의 꿈입니다. 어쩌다 그런 신앙이 생겼을까요.

사실 싱크대는 예전에 우리네 부엌에서 어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불을 때고 쌀을 씻고 설거지를 하던 것을, 일어나서 작업을 하고 손쉽게 선반에 손을 뻗어 식기와 조미료를 넣고 빼낼 수 있게 만든 단순 수납장을 곁들인 작업대일 뿐입니다. 그리고 수납장으로 인해 부엌에서 발생하는 열과 습기가 벽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위생적으로도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고, 싱크대를 구성하는 나무 소재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도장이 그다지 인체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되는데도, 어찌된 것인지 모두 눈 가리고 귀 막은 채 유혹에 휘둘리게 됩니다. 그 견고한 신앙을 깰 수가 없습니다.

예전처럼 집 바깥에 부엌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그것도 거실에 붙여서 만들다 보니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싱크대가 집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되는 것은 집안에서 살림하는 안주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비슷하니 남들과 서로 비교하기도 쉽고, 집 안에서 거실 벽에 자랑스럽게 매달린 텔레비전 다음으로 보여주는 가구가 싱크대이니 사람들은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보기에는 기능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데도 상표가 무엇이 붙어 있는가에 따라 싱크대에 무척 높은 금액이 책정되고, 그에 대해서는 일고의 반성이나 검증 없이 수용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싱크대는 어떤 신분의 표식이나 신분의 완성, 혹은 욕망의 현재화 등등의 의미가 투영되면서 아주 골치 아픈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의 부엌, 그중에서도 대갓집의 화려한 부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혹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돌아갔는지를 자세히 잘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돌이켜보면 우리네 부엌, 벽돌이나 흙으로 쌓고 시멘트로 말끔히 미장한 부뚜막과, 그 위에 밥을 짓는 솥이 얹혀 있고 혹은 그 솥에 물을 데워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던 그 부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아 채소를 씻고 설거지하고 여러 가지 일을 했던 부엌. 찬장이라고, 그릇을 수납하는, 대부분 나무로 짜서 만든 가구가 있었고, 쌀통은 마루나 비교적 건조한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된장, 고추장 등은 뒷마당의 장독대에 있었습니다. 그 위로는 안방에서 부엌의 낮은 공간과 지붕 사이를 이용해서 만들어놓은 다락이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주부의 동선은 길고 자세는 구부정해서 보통 힘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허리를 굽히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심지어 더운 물과 찬물이 번갈아 나오는 깔끔한 수도꼭지가 달리고, 작업대 위 아래로 많은 그릇과 냄비와 조리도구들이 한꺼번에 수납되어 동선을 줄여주는 하나의 이름, ‘싱크대’가 등장하면서 주부들은 환호했습니다. 거기에 상하지 않게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찬장인 ‘냉장고’까지 등장하면서 모던 스타일 부엌이 완성됩니다.


우리는 늘 좀 단순하고 적당한 가격의 싱크대를 주인께 권합니다. 물론 설계 초기에는 그런 좋은 명분과 실리적인 제안에 모두 동의합니다. 그러나 정작 싱크대를 설치하는 시점이 되면 입장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들어오면서 우리가 모두 아는 고가의 싱크대가 부엌의 한쪽을 차지하게 됩니다. 싱크대 회사의 직원이 열심히 실측을 하고 가지만, 결국엔 늘 보아왔던 아주 익숙한 별로 다를 것 없는 싱크대가 들어옵니다. 게다가 그것도 유행이 있고 신제품이 나날이 등장하다 보니 그때그때 윗장, 아랫장, 그리고 다양한 상판들의 색상이라든가 재질을 가지고 수많은 의견이 오고 갑니다.

저는 싱크대의 그 복잡함, 선택사양을 죽 나열하고 짝을 지어보라고 하는 그들의 상술도 맘에 들지 않지만, 현대의 우리 삶은 왜 이리도 말도 되지 않는 옵션의 나열과 선택과 조합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가에 좌절합니다. 그 많은 옵션 자체가 기본적으로 잘못된 전제로 시작하고, 그 안에서 어떤 반성이나 항의도 할 수 없고, 단지 우리는 고르고 써야만 한다는 것에 좌절합니다.

기본적으로 싱크대라는 것은 단순히 작업대입니다. 우리는 그저 편한 자세로 일을 하면 됩니다. 문 안쪽에, 상판 한 귀퉁이에 붙는 그 ‘라벨’에 집착해 두세 배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습니다.

사실 저는 부엌일 중에 요리는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닙니다. 다행히 입맛 까다로운 식구가 없어서 가급적 몇 가지로 메뉴를 줄이는데도 한국 음식이란 게 차려보면 그릇 수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거지하는 것만큼 귀찮은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상하게도 그릇에 거품을 묻히고 닦아내는 그 시간 동안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릅니다. 종일 머리를 싸매고 책상 앞에 앉아 고민했던 문제들이 얼결에 시원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보니, 저는 설거지 거리 앞에 서는 일을 좋아합니다.

대신 저는 요리하는 시간 동안 서 있어야만 하는 것은 싱크대의 가장 불합리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싱크대 아래엔 보통 냄비나 프라이팬, 기타 잡동사니를 수납하는 장이 들어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 무릎을 넣을 데가 없어서 의자를 갖다놓고 앉을 수가 없는 형식입니다. 특히 한국요리는 몇 시간 동안 끓이거나 데치거나 하면서 조리과정을 계속 지켜보아야 하는 종류가 많은데, 이왕이면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앉아서 기다리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엌의 싱크대는 기성 제품이 아니라, 다리를 마치 일반 회의테이블처럼 따로 철제로 맞추고, 상판은 인조 대리석을 주문해서 4미터 길이의 긴 책상 같은 모양으로 조립했습니다. 싱크대는 책상보다는 10센티 미터 정도 높은 편이라 일반 의자로는 불편하니 스툴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러자 도마를 놓고 하는 칼질도 앉아서 하고, 양념도 앉아서 섞고, 볶음이나 무침도 앉아서 할 수 있는 싱크대가 완성되었습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앉아서 책을 읽거나 딴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영 불성실해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너무나 편안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저는 거기에 ‘게으른 여자의 부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무척 흐뭇해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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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집노은주,임형남 공저 | 예담
집을 짓기 전에, 이사를 가기 전에, 인테리어를 바꾸기 전에, 집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길 권하는 책이다. 노은주ㆍ임형남 부부 건축가는,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하고,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에서 ‘소나기학교’의 기획을 맡는 등, 대중과 소통하는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저자들은 집이 가족의 관계를 존중하고 있는지,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지, 단열과 환기에 대한 오해는 없는지 등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과연 사람을 살리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노은주,임형남 저자의 집 이야기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철학자 강신주 “최효종 씨, 군대 다녀오면 인간관계 재편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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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놀라셨나요?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식습관, 사료 VS 식사’를 정의한 강신주 선생님을 ‘최효종의 추파’에서 만났습니다. 2년 전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에서 인기를 끌었던 ‘다상담’의 후속작으로 이어지고 있는 벙커1 ‘강신주의 다상담’. ‘이 죽일 놈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다상담’이 『강신주의 다상담』 1,2권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는데요. 현장에 가기 어려웠던 독자들에게 번뜩이는 삶의 공식을 돌직구로 들려 드리고 있습니다.

오는 10월, 군 입대를 앞둔 최효종 씨는 요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다상담에 군대 상담도 포함되죠?”라며 강신주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요. 강신주 선생님은 “군대에 다녀오면 인간관계가 재편된다. 다녀오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최효종 씨를 격려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연예인들은 악플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라오는 법. 인기가 높아지면 그림자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 번 견뎌보면 별 것 아닌 것이 ‘악플’”이라고 말했습니다. “철학은 심플하다”고 말하는 강신주 선생님은 “일만 하면 소가 된다. 일하는 시간과 향유하는 시간을 나눠야 한다. 최저생계비를 계산해 삶을 향유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 관계, 미래 때문에 고민인 독자 분들! 무조건 일독하시길 바랍니다. “개미처럼 살지 말고 베짱이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의 속뜻이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최효종의 추파’ 강신주 편은 8월 23일, <채널예스>에서 공개됩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네티즌이 꼽은 하루키 최고작은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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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특집 이벤트에는 총 2,218명의 네티즌이 응모(중복 응모 가능)했다. 이 중 많은 네티즌이 『상실의 시대』를 하루키 최고작으로 선택했다.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채널예스에서 공개한다. 10위 권 밖의 작품 중에서 작품 중 눈에 띄는 것으로 『언더그라운드 (11위, 17표)』,『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4위, 11표)』등이 있다.


⇒ 하루키 특집 이벤트 보기


1위 상실의 시대 (963표)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사

1986년 말에 그리스의 미코노스 섬에서 쓰기 시작해 이듬해 봄 로마에서 탈고했다. 그는 이 소설을 쓰면서 세 가지 시도를 했다. 우선은 철저한 리얼리즘 문체로 쓸 것. 두 번째는 섹스와 죽음에 관해 철저하게 언급할 것. 세 번째로 <바람의 노래로 들어라>란 소설이 포함하고 있는 처녀작적 수줍음을 소거하여 ‘반 수줍음’을 정면으로 내세울 것. 원래 이백오십 매 정도의 가벼운 소설을 쓸 생각이었는데, 쓰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어서 결국 장편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본래 자신의 원래 스타일이 아닌 소설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하루키에게 꽤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2위 1Q84 (384표)

1Q84

무라카미 하루키│문학동네

하루키에게는 제목부터 시작하는 소설과 나중에 제목을 붙이느라 고생하는 소설이 있는데, 1Q84는 완전히 제목부터 시작한 소설이다. <1Q84>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면 어떤 소설이 될까,하는데서부터 시작한 소설이다. <언더그라운드>의 주요 소재가 되었던 옴진리교 취재 작업이 이번 소설의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옴진리교 사건이 야기한, 혹은 그 사건이 초래한 ‘프리(pre) 옴, 포스트(post) 옴’의 심적 상황, 아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숨어 있을 그런 어둠 같은 것, 내가 문제로 삼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입니다.”




3위 해변의 카프카 (213표)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2005년도 <뉴욕타임스> 올해 출판된 가장 뛰어난 5권의 픽션으로 선정되기도 한 소설. 23년간의 하루키 문학을 집대성하는 소설 『해변의 카프카』 양장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독자들을 매혹시켰던 내면적인 세계와 『태엽 감는 새』에서 추구했던 역사와 개체 간의 관계는 더욱 심화되었고,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부모 자식간의 모습과 일본의 고전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차용한 생령의 모습 등에서 볼 수 있듯 문학적 모티프는 더욱 풍성해졌다.





4위 태엽 감는 새 (68표)



태엽 감는 새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태엽감는새와 화요일의 여자들」(1986)이라는 단편소설을 장편으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최초의 아이디어. 제 1부를 <신조>에 연재했고 제 2부와 제 3부는 바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2010년 “<태엽감는새>를 다 썼을 때, 이것으로 내가 메인 트랙에 올라섰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이것이 내가 애초에 하고 싶었던 라인이라고 말이죠.“ 하루키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로 올린 작품이며,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태엽감는 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5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61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일본에서 50만 부라는 파격적인 초판 부수로 기대를 모으고, 출간 이후에는 7일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는 등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다시 쓴 세계적 화제작이다.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남자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개인 간의 거리, 과거와 현재의 관계,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프란츠 리스트 「순례의 해」의 간명하고 명상적인 음률을 배경으로 인파가 밀려드는 도쿄의 역에서 과거가 살아 숨 쉬는 나고야, 핀란드의 호반 도시 헤멘린나를 거쳐 다시 도쿄에 이르기까지, 망각된 시간과 장소를 찾아 다자키 쓰쿠루는 운명적인 여행을 떠난다. ‘색채’와 ‘순례’라는 소재를 통해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솔직하고 성찰적인 이야기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 이래 처음으로 다시 집필한 리얼리즘 소설이다.


6위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47표)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무라카미 하루키 | 비채

“하루키가 아니었다면 누가 채소의 기분을 상상이나 했을까?”라는 시인 정호승의 말처럼, 이번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역시 아무도 글로 담지 않았던 야릇한 기분이나 공기의 감촉을 달라지게 하는 미묘한 분위기를 적확하게 표현해낸다. 작가 특유의 고감도 더듬이로 분명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포착해낸 일상의 조각들이 신선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평소 낯가림이 심하기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펼치는 순간, 편안한 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하며 가끔은 수다스러워지는 하루키 씨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7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41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쓴 소설. 이 소설로 군조신인상을 받으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스물아홉살의 어느 봄날, 진구구장의 외야석에서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자신을 위해 무언가 쓰고 싶다고. 그래서 키노쿠니야에 가서 만년필과 원고용지를 사와서 쓰기 시작했다. 좀 더 심플하게 쓰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쓰지 않았을 만큼 심플하게. 심플한 말을 반복하여 심플한 문장을 만들고, 심플한 문장을 반복하여 결과적으로 심플하지 않은 현실을 그리는 것.



8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35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하루키의 작가적 상상력이 극에 달한 작품. 특이한 구상과 소설 내내 흐르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발한 발상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소설로서의 규모나 깊이는 말 할 것도 없고 SF적 요소까지 가미된 참으로 보기 드문 걸작이다. 작품의 완성도, 문학성, 재미까지 모든 분야에서 최고다.







9위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25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 | 비채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주간 「앙앙」의 인기 연재 ‘무라카미 라디오’의 일 년 치 글을 묶은 것이다. 2009년, 작가가 오랜 휴식을 끝내고 10년 만에 연재를 재개하면서 더불어 추진된 ‘무라카미 라디오 단행본 프로젝트’ 제2탄인 셈이다. 진지한 사색과 넘치는 위트의 환상적인 앙상블에, 에피소드마다 곁들인 오하시 아유미의 여백이 있는 동판화 컬래버레이션이 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하루키 스타일로 에세이 쓰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귀찮은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 (뭐가 자랑에 해당하는지 정의를 내리긴 꽤 복잡하지만.)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 (물론 내게도 개인적인 의견은 있지만, 그걸 쓰기 시작하면 얘기가 길어진다.)


10위 먼 북소리 (23표)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1986년, 하루키는 지쳐 있었다. 거미줄처럼 짜여진 강연과 원고 청탁도 문제지만, 자신이 이 생활을 끊을 수 없으며 이렇게 성큼 마흔줄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나이를 먹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하지 않은 채 그 나이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강박관념. 이것이 어느 날 아침 그가 서둘러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유다. 3년간 그리스의 외딴 섬과 로마의 겨울을 지내며 기록한 이 여행 에세이는 사실 '여행'의 기록이라기 보다 '생활'의 기록에 가깝다. 여행 에세이니 필시 낯선 곳의 풍광을 담고 있을 터이지만 뜨내기 여행자의 기록과는 달리 시장과 거리 언저리에서 작가가 직접 만나고 겪은 유럽과 유럽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는 이 시간 동안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를 유지해 나갔다는데, 그 휴식과 이완의 시간을 통해 하루키의 명작『상실의 시대』가 탄생했으니 그의 휴식은 진정 달콤했노라. 절판된 지 9년만에 다시 출간된 반가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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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손예진 설리의 선택! 조선판 해양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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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해적: 바다로 간 산적><두 얼굴의 여친><댄싱퀸>을 통해 연출력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이석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상어>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게 된 김남길, 손예진의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며 촬영 전부터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바다로 간 산적 ‘장사정’ 역의 김남길은 자신의 이름을 알린 드라마 <선덕여왕>이후 다시 한번 사극에 출연하며 ‘비담’을 능가하는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이며, 바다를 호령하는 여자 해적 ‘여월’ 역에는 흥행보증수표 손예진이 캐스팅되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색다른 매력을 뽐낼 예정이다. 김남길과 손예진을 필두로 영화를 풍성하게 채우는 산적단과 해적단을 연기한 배우들의 면면 역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대한 신뢰감을 더한다. 


산적단에는 원조 씬스틸러 유해진과 박철민, 그리고 <SNL 코리아>의 크루로 종횡무진하고 있는 김원해와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맹활약 중인 조달환이 출연하여 영화의 막강한 웃음을 책임진다. 해적단에는 연기돌 f(x)의 설리와 드라마 <학교>로 주목을 받은 신예스타 이이경이 합류해 극장 비주얼의 해적단을 결성했다. 이 외에도 뮤지컬계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정성화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으며 이경영, 김태우 등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가세해<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최강 조연단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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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진행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첫 촬영은 귀신고래의 뱃속을 갈라 조선의 옥새를 꺼내오면 크게 출세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산적의 우두머리 ‘장사정’이 해적으로 전향할 것을 결심한 뒤 수하들을 이끌고 급히 바다로 향하는 장면의 촬영 분이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짙은 분장과 두꺼운 의상을 입은 채 산적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김남길, 유해진, 박철민 등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산적들은 쉴 새 없이 산 등성이를 뛰어다니는 투혼을 불살랐다는 후문. 멋진 영상을 담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배우들과 스탭들의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며 첫 촬영을 시작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내년 개봉을 목표로 대장정에 돌입했다.


바다로 간 산적 ‘장사정’과 해적단 ‘여월’의 귀신고래 소탕작전을 그린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조선판 해양 블록버스터로 2014년 상반기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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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은 어떻게 무대에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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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이 고전부터 현대극까지 아우르는 7개의 발레극을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리허설, 공연실황까지 밀접한 거리에서 생생하게 스크린 안에 담아낸 <라 당스>는 150여 명의 무용수의 옷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아뜰리에와 연습 때마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반주자, 무대 조명팀, 심지어 식당과 사무국까지 진정한 무대 뒷편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보다 완벽해지기 위한 1500여 명의 스탭들의 매일은 예술의 지난한 과정과 본질에 대해 다시금 성찰케 한다.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파키타> <호두까기 인형>의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은 물론, 혁신적인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개발해내는 모든 과정이 <라 당스>를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루돌프 누레예프, 웨인 맥그리거, 사샤 왈츠 등 전 세계 최고의 안무가들이 모두 모였고, 수 백 년간 사랑 받은 바흐,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클래식부터 현대음악까지 아우르는 거장들의 선율이 끝없이 이어진다. 한편 프랑스 유명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한 파리오페라극장은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자 화가 샤갈이 극장 천장에 대형 천장화를 그린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23년 프랑스의 공식 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축물이니만큼 발레, 클래식, 건축까지 한 시도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예술의 세계가 <라 당스>안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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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라 당스><티티컷 풍자극> <하이스쿨> <크레이지 호스>등 병원, 고등학교, 법원 등 사회 전반의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폭로 고발하는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다큐멘터리의 거장이라는 호평을 받아온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의 36번째 작품으로, 발레의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의 작품 탄생과정과 함께 예술을 향한 집요하고도 완벽한 열정을 포착해내 더욱 특별한 감동을 더하는 명품 다큐멘터리를 탄생시켰다. 


더불어 <라 당스>의 미덕은 단지 발레단의 연습과정만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의상 소품팀, 미용팀, 조명팀은 물론, 하나의 큰 무대를 이루기 위한 모든 이들의 삶을 따라간다. 처음엔 아름다운 그들의 몸의 연기에 홀리지만 <라 당스>는 어느 순간 각자의 분야에서 보다 완벽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는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번지르르한 겉모습 이전에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게 하는 <라 당스>는 눈 앞에 펼쳐지는 지상 최고의 발레와 클래식의 향연에 눈과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다큐멘터리이다. 350년 만에 세계 최초로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아 화제를 모은<라 당스>는 오늘, 8월 22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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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 55회 - 月을 소재로 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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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ussian Red - January 14th

수록 앨범 : < Fuerteventura >

1986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여가수 로우데스 헤르난데스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립스틱 이름을 예명으로 정하고 가수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 립스틱 이름은 러시안 레드. 그가 2011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는 연인이 떠난 1월 14일을 무덤덤하게 노래합니다.
2. Goo Goo Dolls - January friend

수록 앨범 : < Dizzy Up The Girl >

1980년대 후반에 결성된 록 밴드 구구돌스는 1990년대에 「Name」과 「Iris」가 히트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8년에 발표한 앨범 < Dizzy Up The Girl >에 수록된 「January friend」는 직선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이들의 초기 사운드를 담고 있는데요. 베이시스트 로비 타카치가 보컬을 맡았습니다.

3. 가을방학 - 3월의 마른 모래

수록 앨범 : <선명 >

모든 학생들의 바람은 가을에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 소원을 그룹 이름으로 정한 가을방학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계피와 언니네 이발관의 정바비가 결성한 혼성 듀엣입니다. 2013년 봄에 공개한 「3월의 마른 모래」는 코트 주머니 속에 있는 모래를 매개체로 인연을 맺는 연인의 소박하고 소중한 감정을 담고 있죠.

4. Pat Boone - April love

수록 앨범 : < Millenium Collection - 20th Century Masters >

1950, 60년대 댄디 보이 이미지로 로큰롤을 순화시켜 인기를 얻은 팻 분의 「April love」는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데요. 1957년에 무려 6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호령했던 곡입니다. 팻 분과 셜리 존스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 주제곡으로 그해 아카데미 주제곡 후보에 오르기도 했죠.
5. Chris DeBurgh -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수록 앨범 : < Crusader >

영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싱어 송라이터 크리스 디버그는 1987년에 「Lady in red」로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전인 1979년에 공개한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로 이미 알려진 가수입니다. 이 4월의 찬가는 당시 국내 다운타운 가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크리스 디버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졌지만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남미에서의 반응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인지도가 상승하지 않았죠.


6. Simon & Garfunkel - April come she will

수록 앨범 : < Sound Of Silence >

사이먼 &가펑클이 1966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지금도 4월이 되면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인데요.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1분 50초라는 짧은 러닝타임이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이죠.
7. Deep Purple - April

수록 앨범 : < Made In Japan >

위에 언급한 「April come she will」과는 반대로 4월이 되어도 자주 들을 수 없는 노래가 바로 딥 퍼플의 「April」입니다. 앨범의 러닝타임이 무려 12분이 넘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선곡하기 힘들지만 1970년대에는 음악다방에서 골든 레퍼토리로 자리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 하드록과 클래식을 접목한 이 곡은 아트록의 효시격인 노래죠.

8. Bee Gees - First of May

수록 앨범 : < The Ultimate Bee Gees >

매년 5월 첫 날이 되면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노랩니다. 비지스가 1969년에 발표한 이 곡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강아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네요. 영국에선 6위, 미국에선 37위를 기록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애청되는 골든 레퍼토리입니다.

9. Jamiroquai - Seven days in sunny June

수록 앨범 : < High Times - Singles 1992 ~ 2006 >

우리나라에서 애시드 재즈 열풍을 주도한 자미로콰이가 2005년에 발표한 이 곡은 리더 제이 케이와 새로운 건반 주자로 가입한 매트 존슨이 만들었습니다. 6월의 맑은 하늘을 떠올리는 이 노래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 삽입되어 작품의 유쾌한 분위기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켰죠.

10. Uriah Heep - July morning

수록 앨범 : < Look At Yourself >

10분이 넘는 대곡 「July morning」은 영국의 하드록 밴드 유라이어 힙의 국내 대표곡입니다. 물론 외국에선 「Easy livin'」이 가장 유명하구요. 1970년대 음악다방을 화려하게 수놓은 곡이죠. 하드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이 적절하게 안배된 이 노래는 보컬리스트 켄 헨슬리와 건반주자 데이비드 바이런이 작곡했습니다.

11. Earth Wind & Fire - September

수록 앨범 : < Greatest Hits >

9월을 대표하는 곡으로 매년 8월 말만 되면 신청이 쇄도하는 「September」는 많은 사람들이 히트를 노리고 8월이나 9월에 발표됐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1978년 11월에 공개됐습니다. 어스 윈드 &파이어는 이 노래의 히트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11월에 싱글을 풀었던 거죠. 9월의 화창한 휴일을 연상시키는 이 곡은 무한 행복을 전이시키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12. Neil Diamond - September morn

수록 앨범 : < The Essential Neil Diamond >

1970년대 미국을 대표했던 남성 싱어 송라이터 닐 다이아몬드가 1980년에 히트시킨 이 노래는 프랑스 가수 질베르 베코의 원곡입니다. 여기에 닐 다이아몬드가 영어 가사를 붙여서 발표한 노래가 바로 「September morn」이죠. 질베르 베코가 작곡하고 부른 다른 노래 중에서 또 유명한 곡이 에벌리 브라더스와 뉴 트롤스 등의 버전으로 유명한 「Let it be me」입니다.

13. Green Day -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수록 앨범 : < American Idiot >

1982년 9월, 한 아이의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 날, 그의 10살짜리 아들은 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뛰쳐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죠. 어머니는 걱정이 돼서 아들을 쫓아가 방문을 열어달라고 하지만 그 소년은 울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9월이 끝나면 깨워주세요.” 그 10살짜리 아이는 23년이 지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만든 그린 데이의 보컬리스트 빌리 조 암스트롱입니다.


14. 김동규 -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수록 앨범 :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

바리톤 김동규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각인시킨 노래입니다. 이 곡은 노르웨이의 연주 그룹 시크릿 가든이 1995년에 발표한 「Serenade to spring」에 시인 이정하와 한혜경이 우리말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

15. Barry Manilow - When October goes

수록 앨범 : < 2:00 A.M. Paradise Cafe >

10월이 되면 여기저기 들리는 노래 두 곡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요고, 다른 하나는 팝이죠. 가요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고, 팝은 배리 매닐로우의 「When October goes」입니다. 스탠더드 재즈 풍의 「When October goes」는 1984년에 발표한 곡인데요. 그해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가장 큰 히트곡 중 하나입니다.

16. A-Ha - October

수록 앨범 : < Scoundrel Days >

1980년대, 「Take on me」와 「Manhattan skyline」, 「Cry wolf」 같은 곡들로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노르웨이 그룹 아하가 1986년에 발표한 2집 < Scoundrel Days >에 삽입된 「October」가 소폭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여기선 이 「October」 말고 「Stay on these roads」가 더 애청됐죠.

17. Wyclef Jean - Gone till November

수록 앨범 : < Greatest Hits >

힙합 트리오 퓨지스의 리더 와이클레프 장이 1998년에 발표한 솔로 데뷔앨범의 첫 싱글입니다. 비틀즈의 「Michelle」과 컬처 클럽의 「Karma chameleon」을 샘플링해서 뒤섞은 이 노래 가사에는 I'm knockin' on heaven's door like I'm Bob Dylan이란 가사가 등장하는데요. 그래서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밥 딜런이 직접 출연합니다.

18. Guns N Roses - November rain

수록 앨범 : < Greatest Hits >

11월에 비가 내리면 이 노래는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November rain」의 잔향은 짙고 생명력은 길죠. 보컬리스트 액슬 로즈의 피아노 연주와 후반부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반감을 샀고, 결국 팀의 주축인 두 사람의 결별로 이어집니다. 건스 앤 로지스의 허세와 폼으로 중무장한 이 뮤직비디오는 팝 역사상 가장 비싼 제작비가 투입됐고,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노래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19. Four Seasons - December 1963 (Oh! What a night)

수록 앨범 : < Jersey Beat >

리드 보컬리스트 프랭키 밸리의 가성으로 유명한 포 시즌스가 1976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이 곡은 팀의 건반 주자 밥 가디오와 나중에 그의 부인이 되는 주디 파커가 작곡했습니다. 당시의 유행을 받아들여 디스코 풍으로 편곡한 이 곡은 드러머 제리 폴치가 리드 보컬을 맡았죠. 「December 1963 (Oh! What a night)」은 한 남성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그린 노래입니다.

20. Collective Soul - December

수록 앨범 : < Collective Soul >

미국 조지아 주에서 결성된 콜렉티브 소울은 1990년대를 수놓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 중에서 압도적인 멜로디 감각을 뽐낸 그룹이었습니다. 1995년에 발표한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데요. 여기선 거의 모든 곡들이 인기를 얻죠. 두 번째로 공개한 싱글 「December」 역시 콜렉티브 소울의 탁월한 선율 감각을 과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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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인들을 위하여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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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사랑이 있었다.

서른아홉 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폴. 그녀는 아직 미혼이지만 로제라는 오래된 연인이 있다. 로제는 비록 이혼 경력이 있지만 둘은 마음이 잘 맞았고 금세 서로 사랑에 빠졌다. 다만 로제는 한 번의 이혼 경험 때문인지 함께 살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주말이면 폴을 찾아와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래도 폴은 로제를 사랑했기에 이 상황을 이해했다. 서로에 대한 독립성을 존중하는 더 나은 관계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둘 사이에도 권태가 찾아왔고, 권태 속의 독립성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아닌 무관심으로 느껴졌다. 폴은 로제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눈치챘다. 출장을 핑계로 주말에 도시를 떠나 있고, 연락도 뜸해져만 갔다. 정해 놓은 약속도 일을 핑계로 깨뜨리기가 일쑤였다. 그에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몽이라는 젊은 청년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녀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데다 지나칠 정도로 잘생겼고, 부잣집 도련님이었으며, 피 끓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시몽이 나이 많고 볼 것 없는 폴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 아닌가. 그는 젊은이의 패기로 그녀에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까지 펼치기 시작한다. 밤새워 쓴 편지 보내기,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 간절한 눈빛으로 데이트 신청하기 등 그녀에게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격정적인 사랑의 표현들이었다. 시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콘서트 티켓을 보내왔고, 그 쪽지를 받은 폴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그 등장인물인 ‘사강’이 마음에 들어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다는 프랑수아즈 사강은 스물넷의 나이에 이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썼다고 한다. 갓 스물을 넘은 그녀가 썼다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완숙한 감정의 처리가 놀랍다. 오래된 연인들의 권태로움과 새로운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그렇지만 이 사랑 역시 지금 자신이 겪는 권태를 맞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아는 한 여인의 난해하고 복잡한 감정을 잘 그려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영화화한 <Goodbye Again, 1961>중

오래 연애를 하면 그 감정이 너무 익숙해져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이상 떨림이 아닌 평범함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면 누구나 흔들린다. 그것은 배신을 하는 것도,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잔잔하던 물의 표면이 흔들리듯 우리네 마음도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강은 그 과정에서의 심정 변화를 너무나도 섬세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마치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듯이 말이다.

사랑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해가는 사랑을 지켜보는 일이 생각보다 고통스럽다는 것, 또다시 사랑은 찾아오지만 그 사랑도 변할 걸 알기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복잡한 심정이 녹아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호기심이 익숙함으로, 떨림이 편안함으로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진리다. 그리고 그 당연한 진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오래된 연인들을 위한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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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산책리듬 저 | 라이온북스
어떻게 살고 사랑하고 꿈꾸며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이버 파워블로거 ‘리듬’의 독서 에세이. 그녀는 [달콤 쌉싸름한 일상]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지금까지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자신의 책 이야기를 나눴다. 책에 대한 짧은 감상과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여 놓은 그녀는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내 안에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독서 팁도 꼼꼼히 챙겨준다. 잠도 오지 않는 헛헛한 밤에 읽기를 권하는 《야밤산책》은 마치 책의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듯 당신을 고요하고도 명랑하게 위로할 것이다.

 



프랑스 최고의 감성,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 세계

길모퉁이 카페
독약
어떤 미소
슬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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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같은 자본주의의 민낯을 중국에서 보다 - 조정래 『정글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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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라는 이름은 늘 어떤 기대를 품게 만든다. 그것은 『태백산맥』『아리랑』등을 통해 시대의 기록자로 치열하게 분투해온 원로 작가가 내리치는 묵직한 죽비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일 것이다.


『정글만리』는 여전히 뜨겁고, 묵직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설이다. 이번에 그 목소리는 우리의 이웃에 있는 중국이 곧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며, 한국에게는 그것이 둘도 없는 기회이자 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경고다.

첫 장인 ‘깨끗한 돈, 더러운 돈’이 열리는 공간은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의 국제공항이다. 한국에서 의료사고를 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도망치듯 중국으로 건너온 성형외과 의사 서하원과 그를 돕는 상사맨 전대광을 소개하는 도입부부터 작가는 중국의 민낱을 여지없이 드러내버린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들이 얼마나 멘쯔(체면)를 중시하는 나라이며, 국제공항조차 얼마나 시끌벅적한 소음으로 가득하며, 빈부간의 격차가 까마득한 나라인지를 묘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국인들이 품어온 중국에 관한 고정관념은 하나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중국이 우리보다 더 빠른 고속철을 손수 만들어내고, 100층이 넘는 최신식 고층 빌딩을 척척 지어올리며,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나라이며 우리나라 인구보다도 많은 2억명의 중산층을 지닌 경제대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어버린다.

조정래는 소설적 상상력을 협소하게 만든다며 1인칭 소설을 비판해온 작가다. 그의 소설은 늘 3인칭이다. 게다가 단 한명의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정글만리』는 장이 바뀔때마다 다른 인물을 하나씩 비춘다. 이 방대한 소설에서는 중국의 상사맨 전대광과 김현곤, 베이징대 학생인 송재형과 연인인 리옌링, 일본 상사원인 이토 히데오와 도요토미 아라키, 동양계 미국인 사업가 왕링링과 한국인 건축가 앤디 박, 중국의 신흥부자인 리옌링의 아버지 리완싱 등이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나간다.

그러니 한두줄로 요약할 수 있는 줄거리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전대광은 중국 비즈니스를 통해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본다. 그의 사업적 파트너인 김현곤은 한국의 철강을 중국에 팔려고 애를 쓰는 가운데 일본인들과 수출의 길목마다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그리고 한일 양국이 철강을 수출하려는 회사는 미국계 기업인 왕링링의 골드 그룹이다. 소설에서 가장 굵직하고, 향후 전개를 궁금하게하는 이야기의 축이라면 이 한중일 삼국간의 철강 비즈니스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더 흥미진진한 지점은 송재형과 중국인 연인과 만들어가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다. 재형이 경제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국적이 다른 연인과의 결혼을 추진하면서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는 모습은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작가는 날렵하게 잽을 날리듯,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능수능란하게 넘나든다. 게다가 비즈니스전쟁에서 한국이 승리하지 않을까하는 뻔한 결말에의 기대도 여지없이 배반해버린다. 소설에서 비즈니스에 얽힌 이야기는 중국의 경제구조와 비즈니스의 관례를 낱낱이 들여다보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만 작동한다.

3권 1200여 쪽에 달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중간에 멈출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있는 데다 정보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80여권의 중국 관련 서적을 읽고, 90권의 수첩을 다 채울 만큼 치밀한 취재를 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오쩌둥의 대장정부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이르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꿰뚫게 되고, 비상하는 중국경제의 이면을 조감하게 된다. 책의 표현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첩첩인 세상’인 중국의 현재를 그리기 위해 작가는 베이징, 상하이, 시안, 칭다오, 홍콩 등을 종횡무진 한다. 작가는 향후 중국을 대상으로한 사업의 아이디어도 한아름 던져준다. 중국의 명품시장과 식품, 화장품, 의료 시장 등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직장인 독자들을 솔깃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일종의 교양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전대광은 자신의 후임으로 온 후배를 앞에두고 이렇게 교육을 시킨다. “차 좋아해요? 중국에서 중국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할 사람이 중국차를 모른다는 것은 진시황을 모르고, 당나라 문화를 모르고, 중국인의 기질을 모르고, 중국의 풍습을 모르고, 중국의 현대사와 마오쩌둥을 모르고, 개혁개방과 덩샤오핑을 모르는 것과 똑같은 약점이오. 비즈니스만 요령껏 잘하면 됐지 골치 아프게 그런 걸 왜 다 알아야 하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오. 그런 것들을 다 아는 게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는 요령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여기는 서양이 아니라 중국이오.”

소설 속 중국은 공산주의라는 외형은 유지하고 있지만, 돈을 벌기위한 욕망에 있어선 다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지독한 자본주의 국가와 다름없이 묘사된다. 공안을 통해 철저하게 통제와 감시를 하지만 중국의 비즈니스는 꽌시를 통해 관료와 결탁하면 안될 것이 없고, 관료와 부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첩인 얼나이를 두고 있는 두 얼굴의 나라인 것이다. 3년 전 발표한 『허수아비춤』에 이어 이 책은 ‘자본주의 연작 소설’로 읽혔다. 작가는 “삶의 문제고, 곧 생존의 문제인 경제에 관해 어떻게 작가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념의 시대를 가로질러, 자본주의의 명암을 되짚어보는 시대를 맞아 작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농민공의 이야기는 유난히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이 남자는 몸이 부서져라 공사현장에서 일하고도 우리 돈으로 40만원 남짓인 2000위안을 번다. 평생 불구가 될 큰 사고를 당하지만 그는 치료를 받기는커녕, 일터에서 내쫒기고 협박까지 당하고 만다.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는 이런 어두운 이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런 소외된 그늘조차 세심하게 조명해준다.

돌아보면 조정래의 소설은 늘 한결 같았다.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소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웅숭깊은 맛이 있었다. 늘 꼿꼿한 모습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고, 책을 통해 시대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발견한 답변을 들려주곤 했다. 소설이 짧고 가벼워지는 시대가 됐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타협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책장을 덮으면서 어느덧 노작가의 다음 질문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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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조정래 저 | 해냄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탈바꿈하며 세계 경제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비약적 성장과 급변하는 한반도의 정세 속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직시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작가는 『정글만리』에서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의 중심이 되며 G2로 발돋움한 중국의 역동적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도시들과 싼 목숨으로 취급받는 농민공들의 모습 등 경제개발의 어두운 이면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들과 얽히고설킨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웹툰으로 보는 21세기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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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한다. 희로애락이 담긴 사회면 신문기사, 문체가 살아있는 에세이,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숨기지 않는 자서전, 지면의 낭비 없는 단편소설들, 꼼꼼하게 축조된 장편, 한두 단어와 한두 구절로 감정을 압축해 내는 시들, 10년만에 만난 친구가 들려주는 목포항의 풍경들, 익숙해질 때마다 누군가가 내뱉는 영화적인 대사들, 쉽게 털어지지 않는 유행가 가사에 담긴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캐릭터와 유머가 그림을 타고 움직이는 느낌이 좋은 웹툰. 사랑과 결혼과 그밖의 것들 - 연애, 결별, 이혼, 이성애가 아닌 무엇 -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웹툰이 담아내고 있는 2013년 대한민국의 이런저런 풍속들을 대체로 관찰자이자 때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겪어보려 한다. 머릿속을 찌르르 비집고 들어오기도 하고 살짝 웃음짓게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순간들 속으로 손내밀어 이끌고 싶다. 


이야기들은 서로 관통한다. 형식은 다를 수 있어도 그 안쪽은 같다. 사랑은 아름다워서 이야기를 쏟아내며,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수록 절실해져서 듣는 이들의 애간장을 태우고는 이야기를 타고 심장 속으로 파고들 여지를 만들어낸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과 지옥, 삼도천과 사바세계를 오가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타령에 대해 웹툰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빠져본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범인은 흔적을 남긴다. 진실은 오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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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언어학? 그건 또 머야?

사실 법언어학은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학문이다. 씁쓸하지만 언어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비언어학 전공자들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분명한 것은 언어학의 한 분야라는 점이다.


동영상을 본 분들이면 법언어학에 대한 감은 잡았을 것이다. 즉, 법언어학은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사건현장의 단서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한다. 프로파일러나 과학수사에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해도 된다.

어떻게 해야 법언어학을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 법언어학과 관련된 이론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방법은 분명 한계가 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상의 두 가지 사건을 법언어학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의문의 변사체>와 <사라진 내 아이>사건! 과연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까?

아래의 두 가지 사건은 모두 허구임을 밝힌다.

사건번호 392109-의문의 변사체

인적이 드문 한 공사장. 김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공사장으로 출근한다. 계속된 추가근무로 지칠 대로 지친 김씨는 공사장 한쪽에서 시체를 발견한다. Y그룹의 임원 손씨의 시체다. 그리고 시체 옆에는 한 통의 편지가 놓여있다.

깜짝 놀란 김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다. 몇 분이 지났을까? 현장에 경찰이 도착했다.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통제에 들어간다. 사건을 맡은 윤형사는 시체 옆의 편지를 꺼내 내용을 확인한다. 편지는 손씨의 유서 같았다.

“내가 정말 미안해. 내가 끝까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서… 내가 먼저 떠나지만 슬퍼하지마.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줘. 사랑해.”

윤형사는 현장근무자들의 탐문수사를 진행한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바로 그 때, 연락을 받고 달려온 부인 주씨가 도착했다. 혼절하기 일보직전이다.

윤형사는 부인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부인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자살에 무게를 둔 윤형사는 죽은 손씨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진다. 주씨는 한형사의 질문은 한 귀로 듣고 흘려 보낸다. 다음과 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주씨는 “우리 남편은 절대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 어제 통화했을 때도 평소와 똑같았다. 일반적으로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은 다르지 않냐? 절대 자살이 아니다! 타살이다!” 고 주장한다. 주씨는 다소 감정에 복받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어서 주씨는 “우리 남편은 지금까지 말을 할 때 ‘내가’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부부 사이의 대화는 항상 존댓말을 썼다. 조작된 유서임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Y그룹의 임원 손씨는 자살인가 타살인가?
사건번호 203950-사라진 내 아이

10년차 전업주부 미희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아침 준비가 끝나면 남편 출근 준비와 딸을 깨우기에 바쁘다. 아침은 항상 분주하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집 안이 조용해졌다. 미희는 평소에 즐겨 듣는 라디오를 켜고 늦은 아침을 먹는다. 어제 남편과 크게 싸운 게 생각났다. 왠수같은 놈... 하지만 먼저 사과를 할 생각은 없다. 하소연이라도 할 생각에 단짝 친구 정미에게 전화를 건다.

정미와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늦은 아침을 먹은 생각은 까맣게 잊은 듯 하다. 다이어트 결심도 함께 잊어버렸다. 이번에는 3일도 못 갔다.

탑처럼 쌓인 빨래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집안일을 할 시간이다. 부랴부랴 집안일을 시작한다. 어느덧 딸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간식을 준비하고 딸을 기다린다.

10분 20분…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딸은 아직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집밖을 나선다. 그 때 갑자기 양씨의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제한으로 걸려온 전화다.

“딸은 잘 있다. 딸을 찾고 싶으면 현금 5억을 준비해라. 만약 경찰에 알린다면 딸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않는다. 양씨는 딸을 찾을 수 있을지에 불안감에 떨고 있다. 그런데 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설마?

10년차 전업주부 미희는 범인을 잡고 무사히 아이들을 찾을 수 있을까?

증거 없는 사건은 없다! 법언어학을 통해 범인을 검거해보자.

과연 두 사건 모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까? 만약 범인을 검거했다면 어떻게 검거했을까? 물론, 각종 매체를 통해 위와 같은 범죄사건을 많이 접했다면 콧방귀를 낄지 모르겠다. 흔한 소재의 사건으로 쉽게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을 쉽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흔한 범죄사건이다. 다만 이번 두 사건을 법언어학의 접근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싶을 뿐이다. 최근 MBC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과 영화 <테이큰>은 사건 해결을 위한 좋은 예가 된다.

첫 번째 사건은 죽은 손씨의 말투를 생각하면 타살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한 장면에서 공기찬(양진우 역)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우마미(조윤희 역)는 남편 공기찬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드라마 속 여러 가지 증거들이 타살로 무게를 싣지만 주목할 부분은 공기찬이 우아미에게 보낸 문자다.


MBC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한 장면. 죽기 전에 우아미에게 보낸 공기찬의 문자.

우아미가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공기찬이 평소에 쓰는 말투다. 공기찬은 한 번도 자신에게 “자기야”라고 부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개개인마다 다른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아미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이처럼 평소에 쓰는 사람의 말투를 확인하여 사건이 실마리를 찾는 것이 법언어학이다.

두 번째 사건은 범인의 목소리를 추적하여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음성학의 측면에서 본 법언어학이다. 개개인마다 고유의 음성주파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범인의 목소리를 가지고 검거할 수 있는 것이다. 넘치는 부성애를 보여준 영화 <테이큰>의 한 장면이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자신의 딸이 괴한에게 납치당했다. 납치되기 전 딸과의 통화에서 범인에게 들은 한 단어 “굿 럭(Good Luck)” 브라이언(리암 리슨 역)은 전직 특수요원으로 딸과의 통화내용을 바탕으로 범인을 추격한다. 마침내 유괴범의 소굴이 도착하고 그의 복수가 시작된다.


범인에게 “굿 럭(Good Luck)”은 “배드 럭(Bad Luck)”이었다.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과 영화 <테이큰>의 사건해결 과정을 맨 처음에 언급한 두 사건에 적용하여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사건 <사건번호 392109-의문의 변사체>
타살로 무게를 둔 이유는 유서가 평소 손씨의 말투와 부부간의 존댓말 사용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건 <사건번호 203950-사라진 내 아이>
사람들의 음성에는 고유한 주파수가 존재한다. 따라서 범인의 음성주파수를 확인하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

번외 경기 <Cuckoo’s Calling의 진짜 저자를 찾아라>

수많은 단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된다. 역으로 생각한다면 단어를 보고 사용한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언어사용에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The Cuckoo’s Calling』의 저자를 찾는 과정을 한 번 살펴보자.


한국에 번역되면 재빨리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범죄소설 『The Cuckoo’s Calling』은 Robert Galbraith의 저자로 출판되었다.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많은 독자들이 소설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한 작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선데이타임즈의 한 기자는 『The Cuckoo’s Calling』의 저자는 J.K Rowling(해리포터의 저자)이라 생각했다. 그가 날린 트윗은 J.K. 롤링의 작품임을 확인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는 언어전문가들의 『The Cuckoo’s Calling』분석을 의뢰한다.

언어전문가의 분석이 J.K Rowling의 작품임을 확실시했다. 언어전문가들은 어떻게 『The Cuckoo’s Calling』이 J.K롤링의 작품임을 확인 할 수 있었을까?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J.K Rowling의 이전의 작품들과 비슷한 유사점을 발견했다. 비슷한 라틴어구의 사용과 장면의 설정이다.”

분석의 핵심은 동일한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를 사람마다 다르게 선택한다는 점이다. 『The Cuckoo’s Calling』의 경우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를 라틴어로 사용했다. 인터뷰에서 J.K Rowling은 "비밀이 좀 더 오래 지켜지길 원했다" 말했다. 하지만 법언어학 앞에서는 어림도 없다.


한국에서의 법언어학

한국에서 법언어학이 관심을 받게 된지가 얼마 안 되었다. 한국에서는 미개척의 영역이다. 언어학의 하위분야에 해당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관련된 연구가 거의 없다.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게 번역되어 출판된 책도 없다. 관련 서적이 턱없이 부족하다.


법언어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책이다.

결정적으로 법언어학과 관련된 학과가 없다. 적합한 커리큘럼도 없다. 대학원의 과정에서 이따금씩 다루는 경우가 전부다. 반면에 외국의 경우에는 법언어학과 관련된 전공이 개설되고 학회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미개척분야인 법언어학을 정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충분히 가치 있고 매력 있는 학문이다. 희망사항으로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개론서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능력 밖이다.

이번 학기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인지과학과 석ㆍ박사 과정에 ‘현대언어학의 동향’의 과목이 개설되었다. 강의계획서를 보고 법언어학을 다루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언어학을 공부하고 싶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 청강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기회가 되면 강의실에서 저자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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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이의 장난감 세상 뮤지컬

Penguin loves Mev, ‘한국 남자’ 너머의 이상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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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펭귄 러브즈 메브


“한국 남자 말고 외국인이랑 만나보고 싶어.”라는 말을 해본 대한민국 여자 사람은 통계상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은 숫자는 아닐 것이다. 현재 외국인이랑 만나는 대한민국 여자 사람 역시 적은 숫자는 아닐 텐데, 길거리나 카페에서 다른 나라 언어로 대화하는 커플을 종종 마주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어딘가 다를 것 같은 외국인과의 연애, 그 로망을 제대로 충족시켜 주는 웹툰이 바로 ‘Penguin loves Mev’ 다. 


‘Penguin loves Mev’는 생활웹툰이다. 웹툰작가인 펭귄이 영국 남자 메브를 만나 사랑하고 또 결혼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300회 가량의 에피소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연재된 것은 4년 정도, 시즌 3를 맞고 있는 현재 펭귄과 메브는 영국에 살고 있다. 펭귄은 웹툰을 한국에 전송 중이며, 메브는 태권도와 물리를 가르친다. “달달해요”, “부러워요”, ”이런 남자 어디 없나요?”같은 댓글들이 많은데, 파란 눈의 메브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숨은 댓글들이 한숨을 쉰다. “한국엔 없어요.” 


한 달에 한 번 울적해지는 여자, 전에 비해 남자가 사랑한단 말을 자주 안 한다고 시무룩해 했더니, 다음 날 아침 출근 전까지 요리조리 사랑한단 말을 12번이나 하고 가는 남자.(146화, ‘아내를 위해’) 종종 덤벙대는 여자, 그날도 테이블에 발가락을 부딪쳐서 아파하고 있는데, 남자가 나서서 테이블을 혼내준다. “이 나쁜 테이블! 울 와이프를 아프게 하다니!”(171화, ‘혼내주세요’) 남자, 인터넷에서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게시물을 발견하고는 60번 항목 ‘달콤한 말을 귀에 속삭여 보세요’ 를 실천한다. “Can I get a kiss from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덧붙여“Chocolate cake”도. (265화,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신혼이라 그럴 수도 있다. 남자의 성격이 특별히 괜찮아서일 수도 있다. 혹은 작가가 좋은 이야기 위주로 골라냈을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 몇몇 요인을 제거하더라도 한 가지가 남는다. 바로 파란 눈이라는 상징. “외국 남자는 좀 다르대.”라는 유언비어는 한국 여자들에게 의외로 설득력이 강하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여자들은 꼭 확인하려고 들더라. 괜찮아?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어. 칠칠치 못하긴. ‘여자친구로 만드는 법’은 넘쳐나도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은 드문 상황. 20, 30년 살아온 여자들의 직간접적인 학습결과인지도, 별점 10점 행진의 의미는. 



‘Penguin loves Mev’에서 유독 돋보이는 에피소드는 ‘행복을 찾아서’ 편(288화, 289화)이다. 메브는 정교사가 되기 위해 학생들에게 수업도 하고 교사교육도 받는 1년 기한의 GTP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겹다. 시간투자도 많이 했고 안정적인 직업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두기도 아깝고, 생각과 다른 환경과 과도한 업무 때문에 더 이상 지속하기도 어렵다. 둘은 고심 끝에 GTP과정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둘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지금 행복한가?” 


그것도 못 버텨? 한 게 아깝잖아. 나중에 애들 교육비도 생각해야지. 이리 말할 법도 한데, 여느 한국 여자는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꿈을 좇아 대학 시절 학교를 그만두었던 펭귄은 지금 느끼는 행복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메브가 한국의 기간제 교사와 비슷한 대리교사로 일하면서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로 한 것을 적극 지지해 준다. 메브는 이제 영국에서 언젠가 태권도장을 차리고 싶다는 꿈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됐다. 펭귄과 메브는 행복하다.  


한국 남자들은 더 많이 쌓아야 해서 힘겹다. 더더 쌓지 않으면 좋은 여자 만나지도 못하고 집도 못 사고 아이도 못 키운다. 한국 여자들은 더 많이 챙겨야 해서 피곤하다. 더더 챙기지 않으면 좋은 남자 만나지도 못하고, 이하 동문이다. 한국 사람인 이상 쌓아야 할 것 같고 챙겨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떨쳐버리기는 영 어려운 걸까? 우스우면서도 슬픈 부분은 쌓고 챙기는 와중에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점점 틀어진다는 것. 펭귄과 메브 같은 달달하고 부럽고 어디에 없는 것 같은 사랑은 다 쌓고 다 갖추고 난 다음에 해야만 하나? 비겁하게시리 사회가 시켰다고는 하지 말자.  

 

사랑을 찾는 법이 흉흉하지 않기를. 영어회화 학원 원어민 남자강사한테 다섯 번쯤 고백해서 일대일 회화연습 자유이용권을 얻어내는 것과 같은.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환상의 나래 또한 저 먼 창공으로 펴지 않기를. 이상세계는 한국 남자 너머의 얼굴 없는 ‘외국 남자’가 뚝딱 만들어다가 장미꽃 1000송이 꽃다발로 품에 안겨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존 레논을 틀어놓고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한테서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어떤 것일지는 몰라도, 300화 특집편 ‘펭귄은 이상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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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당신! 1인분 요리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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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3일 저녁, 강남구 역삼동 스타일링 더 앤 스튜디오에서 네이버 파워블로그 “천재 야옹양의 생활”, 김민희 저자의 쿠킹 시연회가 펼쳐졌다. 로맨틱 쿠킹 에세이, 두근두근 연애요리 등으로 20대 여성 독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쉽고 빠르게 완성하는 간단 요리로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완성해온 김민희 저자. 이번에는 혼자 먹는 1인 가구나 소규모 가족을 위한 심플 레시피를 소개한 책 『나를 위한 만찬 1인분 요리』를 펴냈다. 책 속에서 소개한 1인분 요리 중 다섯 가지 레시피를 골라 풍성하게 꾸며진 쿠킹 시연회에는 야옹양의 블로그 이웃부터 올리브 TV 애청자까지 다양한 독자들이 참여했다. 옹기종기 둘러서서 조리과정을 직접 보고, 사진으로 담고 메모해가며 적극적으로 요리 시연회를 즐기는 아늑하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1인분 요리’ 라는 컨셉의 책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최근 <나 혼자 산다>라는 TV프로그램이 큰 공감을 얻고 있듯이 혼자 사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결혼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혼자 밥 먹는 때가 참 많고요. 그러다 보니 혼자라서, 귀찮아서 한 끼를 대충 때우는 일이 자연히 많아지더라고요. 혼자 먹는 것도 서러운데 밥상마저 초라하면 서글픈 생각이 들기 마련이잖아요. 어찌 보면 대충 때워도 그만인 점심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혼자만을 위한 밥상을 정성껏 차리는 것도 근사하지 않나요?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점심이라면 스스로 만족스럽게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 정성을 쏟아서 혼자 먹는 밥이라도 대박 맛집 요리처럼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1인분 요리’의 장점이 있다면?

1인분이라서 간단하고 빠른 조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최소의 재료와 간단한 과정으로 딱 1인분만 만들 수 있으니까 평소 요리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도전할 수 있어요. 특히 남은 음식 처리로 고민하지 않도록 재료를 남기지 않는 것도 장점이고요. 여러 사람이 함께 먹을 요리를 할 때는 1인분 요리의 레시피를 인원수에 따라 늘리면 되니, 요리에 자신이 없는 분들도 먼저 레시피를 익힌 후 나중에 좋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겠지요.

오늘 시연한 다섯 가지(버섯가지샐러드/ 닭봉구이/ 참치비빔밥/ 크림치즈쪽파베이글/ 짜장떡볶이)를 선택한 이유는?

쿠킹 시연회이긴 하지만, 친구들과 수다 떨면서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는 디너 파티처럼 꾸며보고 싶었어요. 전채요리인 샐러드부터 고기요리, 든든한 밥, 베이커리 종류인 베이글까지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대접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요.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예를 들어 쪽파 하나를 가지고 샐러드에도 넣고, 베이글 요리에도 넣는 식으로 있는 재료를 남지 않게활용하는 것을 좋아해서 중복된 재료가 들어가는 메뉴로 구성한 이유도 있습니다.

평소 간편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선호하시는데, 독자들에게 알려주실 유용한 팁이 있나요?

책에도 여러 가지 드레싱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같은 재료의 요리라도 드레싱의 종류가 달라지면 색다른 요리가 됩니다.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신선한 드레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한 가지 더! 요리에 일반 후추 대신 통후추를 써보세요. 통후추는 그때그때 갈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요리에 풍미가 확연히 살아납니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요리 레시피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요?

유명 맛집의 음식을 먹거나, 누군가 정성껏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그 맛을 기억해 놓았다가 요리할 때 되살려보곤 해요. 제가 먹었던 맛의 기억을 토대로 집에 있는 재료를 조금씩 변형해서 요리하다 보면 나만의 레시피가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요리책을 샀을 때, 레시피에 있는 그 재료가 없으면 요리를 못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고추장이 없으면 두반장을 넣는 식으로 레시피에 나온 재료보다 좋은 맛을 낼 수 대체 재료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겁내지 말고 다양한 재료로 요리에 도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리를 잘하려면 조리 기구도 좋은 걸 써야겠죠?

오늘 시연회에도 제가 평소에 쓰는 기구들을 몇 가지 챙겨 왔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르쿠르제라는 브랜드를 좋아해서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워낙 무거워서 관절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지금 소스를 졸이고 있는 팬은 오래전 다이소에서 구매한 저렴한 제품입니다. 정말 가볍고 손에 익어서 몇 해째 유용하게 쓰고 있어요. 꼭 고급 제품만을 고집하기보다는 편리하고 나에게 맞는 조리 기구를 적절하게 갖춰놓고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쿠킹 시연회를 찾아준 독자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려요.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찾아와 주시고 제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드셔주어서 감사합니다. 요리하는 사람에게는 “맛있다“는 말이 가장 큰 칭찬이자 행복이니까요. 올리브 TV에서 요리 프로그램도 진행해 보았고, 다양한 시연 행사도 해 봤지만, 이렇게 많은 독자들 앞에서 직접 요리를 선보이고 시식까지 진행해볼 기회는 없었어요. 간단한 레시피이긴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많은 양의 요리를 선보이려니, 느긋하게 식사하시고 대화를 나눌만한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우리집 주방에 가까운 친구와 이웃을 초대한 것 마냥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요리와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따스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여러분도 오늘부터 나를 위한 요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요리를 시작하세요. 특히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어떤 보약보다 더 좋은 직접 만든 밥상에서 큰 힘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밥이 보약임을 아는 당신, 멋집니다!


야옹양의 1인분 요리 레시피


레시피1. 참치비빔밥



밥(1공기), 상추(3장), 깻잎(5장), 달걀(1개), 식용유 약간
참치 양념장 : 참치(1캔), 양파(1/4개), 다진 마늘(1), 옥수수(3), 대파 약간, 고추장(1.5), 설탕(0.3), 맛술(1), 참기름(1), 후춧가루ㆍ식용유 약간

1. 상추와 깻잎은 채 썰고, 양파는 다지고, 참치는 체에 밭쳐 기름기를 뺀다.
2.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양파ㆍ마늘을 중간 불에서 1분간 볶는다.
3. 2에 참치를 넣고 볶다가 고추장, 설탕, 맛술, 후춧가루를 넣고 1분간 볶는다.
4. 3에 옥수수, 송송 썬 대파, 참기름을 넣어 1분간 더 볶는다.
5.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달걀을 풀어 넣고 젓가락으로 휘저으면서 익힌다.
6. 밥에 채 썬 상추ㆍ깻잎과 달걀을 올린 뒤 4의 참치 양념장을 올리면 완성.
레시피2. 짜장떡볶이



떡볶이 떡(1줌), 3분짜장(1봉지), 양파(1/4개), 당근(1개), 양배추(1장), 풋고추(1개), 사각 어묵(1/2개), 고추장(0.5), 고춧가루(0.5), 물(1/2컵)

1. 양파와 당근은 껍질을 벗기고, 양배추는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풋고추는 어슷썰기한다.
2. 달군 팬에 3분짜장, 고추장, 고춧가루, 물을 넣고 중간 불에서 2분간 볶는다.
3. 2에 떡볶이 떡,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사각 어묵을 넣고 볶는다.
4. 3에 준비한 채소를 넣어 살짝 볶으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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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만찬 1인분 요리김민희 저 | 김영사
혼자 먹는 밥상도 풍성하고 맛있게! 싱글족과 소가족을 위한 남김 없는 심플 레시피. 대표 밥반찬부터 카페 브런치, 술안주, 통조림을 이용한 일품요리까지 활용도 높은 120품의 요리를 담았다. 최소의 재료와 과정으로 최대의 맛을 담아낸 가장 효율적인 요리책이다. 싱글족과 소가족을 위한 남김 없는 심플 레시피. 매일 먹고 싶은 엄마밥부터 이태원, 가로수길 브런치 메뉴까지 혼자라도 먹고 싶은 끝판왕 메뉴를 다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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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이곳만큼 매력적인 곳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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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奧地는 사람을 설레게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또 거기에서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지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하지만 이제 엄밀한 의미에서 오지는 지구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마존의 깊숙한 밀림에서 아프리카의 구석구석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은 더 이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지의 사전적인 정의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의 땅’입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땅’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오지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의 땅’이란 뜻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아시아는, 도시는 물론 바다와도 멀리 떨어진 진정한 오지로서 거대한 초원과 사막 그리고 험하고 높은 산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같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과 중국의 신장성, 몽골이 중앙아시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은 1990년대 초 구소련이 붕괴되기 전에는 철의 장막에 가로막혔던 지역이었고 구소련 붕괴 후에도 계속된 내전과 불편한 교통 때문에 외부에서 찾아가기 가장 힘든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이곳만큼 매력적인 곳을 만나기는 힘듭니다. 며칠을 가도 사람 한 명 볼 수 없는 광활한 초원과 사막, 마치 다른 행성에 와있는 것처럼 신비한 바위산과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중앙아시아의 자연은 극한의 황량함조차도 역설적으로,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경제적으로 중앙아시아는 메마르고 험한 자연환경 때문에 농사가 불가능해 유목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습니다. 유목민의 삶 역시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을 닮아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없이 따뜻하고 관용적입니다.


지난 2006년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자연다큐멘터리를 촬영해왔습니다. 그 결과물로 <태고의 땅 몽골>(5부작/2007년), <히말라야>(3부작/2009년), <아시아대평원>(6부작/2012년) 등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습니다(엄밀히 히말라야는 중앙아시아에 넣기 힘들지만 편의상 같이 담았습니다).

자연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 사람의 손이 덜 탄 오지지역으로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 지역은 현지인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관련 자료를 찾거나, 도움을 받을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고 인터넷이나 책에서 어렵게 찾은 자료조차 직접 현지에 가보면 실제와 동떨어진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무모하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지인과 같이 먹고 자며 평범한 여행에서 경험하기 힘든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이 글은 그 일들의 기록입니다.

방송을 하면서 운 좋게 몇 차례 수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멋진 수상소감을 준비해 가지만 막상 수상식장에서 제가 한 말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촬영을 함께한 황경선 촬영감독을 포함한 모든 스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멋진 중앙아시아를 소개해주고 대부분의 일정을 함께 한 야생동물전문가 최현명 형과 <GeaAsia>의 강정호 감독이 없었다면 이 장기간의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일을 핑계로 일 년의 반은 집을 비운 무책임한 저를 묵묵히 지켜봐 준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 아내와 두 아이 희수와 예은에게 이 지면을 통해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합니다. 출판에는 문외한인 저를 격려해주시고 예쁜 책으로 만들어 준 MID의 최성훈 대표와 박동준 이사, 최재천 편집장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귀한 사진을 제공해준 박태준, 이참슬, 최일권, 김미혜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엇보다 이 멋진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3년 8월
서 준


늑대, 두 번째 이야기

유목민의 늑대에 대한 생각은 복잡해서 한편으로는 철천지원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외의 대상이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가축을 해치는 점에서 보면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할 존재지만, 무리를 이뤄 질서 정연하게 사냥하는 용맹한 모습에서는 존중의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또한 늑대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어 자연을 깨끗하게 하고 주로 병에 걸린 가축을 잡아먹어서 가축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늑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예외 없이 이 두 가지 면을 함께 이야기하는데, 어찌됐든 유목민의 늑대에 대한 생각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심지어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푸른늑대’라고 말한다.


늑대를 기르는 사람

가끔 늑대를 기르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첫 번째로 만난 곳은 몽골 ‘수흐바타르 아이막’의 ‘다리강가’ 호수 부근이었다. 내가 말에서 걷어 차였던 바로 그 곳 말이다. 이곳에서 관광캠프를 운영하는 남자는 관람용으로 늑대를 기르고 있었는데, 3년 전에 늑대 굴에서 새끼를 세 마리 꺼내왔다고 한다. 그 중 두 마리는 이미 죽었고 우리가 갔을 때는 암컷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약간의 돈만 내면 늑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우리에게도 권했다. 그러면서 늑대와 관광객들이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꽤 괜찮은 돈벌이가 돼 보였다.

어릴 때부터 사람 손에 길러진 늑대는 행동이나 습성이 거의 개와 비슷하게 되어 스스로도 자신이 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만 탈출을 막고 가축이나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목에 굵은 쇠사슬을 채워 놓은 것이 개와 다른 점이었다. 주인 말에 따르면 개와 비슷하게 기를 수는 있지만 먹이로 소금이나 화학적인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을 주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사람 손에서 자란 늑대는 개와 함께 장난을 치기도 하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 상자 위에 올라가 갖은 재주를 부렸는데 야성野性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먹이로 염소고기를 주었을 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에서 잠깐 늑대의 야성이 느껴졌지만, 먹이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은 집 안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마찬가지 아닌가. 주인은 늑대가 얼마 후면 새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젖도 잔뜩 불어 있는 게 출산이 임박해 보였다. 늑대는 굴을 잘 파는 동물로 야생의 암컷늑대는 새끼를 낳을 때가 가까워오면 출산을 위해 굴을 판다고 한다. 쇠사슬에 묶인 ‘다리강가’의 암컷늑대도 이미 새끼를 낳을 굴을 파고 먹이를 주면 일부만 먹고 나머지는 땅에 묻어 저장을 해뒀는데, 출산을 준비하는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얼마 후면 새끼들이 태어날 것이고, 그 놈들은 이제 사람 손에서 ‘모습만 늑대’로 키워질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태어날 새끼들은 그래도 야생에서 태어난 제 어미보다 조금 더 개와 비슷하게 길러질 것이다. 야성은 없어졌지만 모성은 변함없던 다리강가의 암컷늑대를 보는 내내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새끼늑대 훔치기

두 번째 늑대를 기른 사람의 이야기는 멀리 알타이 산맥에서 시작된다. 이곳에는 카자흐 유목민이 주로 살아가는데 늑대에게 가축이 피해를 입는 것은 초원과 마찬가지다.

유목민들에게는 늑대의 수를 줄여 가축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른 봄 갓 태어난 새끼늑대를 굴에서 훔쳐오는 관습이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늑대 굴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어미늑대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 새끼를 낳고 이후로도 수시로 굴을 옮겨가며 새끼를 기르는 조심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2011년 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한 끝에 알타이의 한 오지마을에서 늑대새끼를 꺼내러 간다는 ‘우넴게르’란 유목민을 만났다. 우넴게르는 올해 들어서만 늑대에게 소 1마리, 양 4마리, 염소는 6마리나 잃었다며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늑대가 가축을 잡아먹는 일 자체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고 말했는데 역시 늑대에 대한 이중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늑대 굴은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있기 때문에 말을 타고 하루 정도는 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늑대 굴을 찾아 산속으로 한참을 들어가다가 ‘바이을라우’란 사냥꾼을 만났는데, 산 위에서 발견한 늑대를 추적하다 우연히 바위틈에 교묘히 만들어 놓은 늑대 굴을 발견했다고 했다. 바이을라우는 굴 주변에 숨어 어미늑대를 기다려봤지만 어미가 나타나지 않아 사냥은 실패했고, 다음 날 아침 굴에 가보니 밤에 어미가 몰래 새끼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놔 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끈질기게 추적을 한 끝에 어미늑대가 바위 밑에 숨겨놓은 새끼늑대를 찾아냈고, 바위 밑에는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새끼 세 마리가 있었다.

보통 동물들은 새끼를 입으로 물어서 옮기는데 어미늑대가 다급한 나머지 미처 새끼를 다른 굴까지 옮기지 못하고 임시로 바위 밑에 숨겨놓았다가 발각된 것 같았다. 늑대새끼는 생후 20일이 되기 전에 훔쳐오는데, 이 시기의 새끼들은 눈을 뜨고 처음 본 상대를 제 어미로 생각한다. 따라서 처음 보게 되는 존재가 사람이면 어미로 생각하여 기르기가 쉽지만, 눈을 뜨고 얼마간 시간이 흘러 친어미를 인식하게 되면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넴게르’와 ‘바이을라우’는 조심스레 새끼를 자루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새끼늑대를 보고 아이들이 마치 강아지를 분양받은 것처럼 좋아했다. 물론 새끼늑대의 운명은 강아지와는 다르다. 새끼늑대는 돈을 받고 필요한 사람에게 바로 팔아버리거나 어느 정도 키운 후에 죽여서 가죽을 이용한다. 늑대 가죽은 방한효과가 뛰어나 고가에 거래되기 때문이다.

3개월 후, 6월에 알타이를 다시 방문했다. 몇 달 사이 눈도 못 뜨고 있던 새끼늑대들은 웬만한 강아지만큼 자라 있었고, 생김새나 행동도 강아지와 똑같았다. 손을 대면 핥고 빨아대며 재롱을 부렸지만, 친어미를 찾는지 가끔은 낑낑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야생의 본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 자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에게는 순한 양같이 굴다가도 촬영을 위해 접근한 카메라를 향해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놈들의 야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는 바로 푸른 눈빛이었는데, 그것이 겉모습은 거의 비슷해 보이는 늑대와 개의 차이점이었다. 또한 늑대는 꼬리가 위로 말리지 않고 항상 아래로 처져 있고, 반대로 귀는 항상 위를 향해 빳빳이 서 있다. 비록 어린새끼들이지만 녀석들의 짙푸른 눈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서늘한 야생의 느낌이 들었다.


늑대의 운명

2011년 10월, 마지막으로 알타이를 찾았을 때 세 마리의 새끼늑대 중 두 마리는 어디론가 팔려가고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불과 4개월 만에 새끼늑대는 거의 어른늑대로 자라 있었는데, 야생에서 봄에 태어난 새끼는 그해 겨울이 되면 거의 성체로 자라 충분히 사냥을 한다. 녀석이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살짝만 스쳐도 피부가 크게 찢길 정도로 이빨은 날카롭게 자라 있었고, 그만큼 힘도 강해진 것 같았다. ‘다라강가’의 늑대에 비해서 훨씬 강한 야성이 느껴졌지만 사람을 보고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을 핥아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개였다. 이렇게 다 자란 늑대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먹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집에서 기르기는 어렵다. 앞으로 녀석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들으나마나 가슴 아픈 대답이 돌아올 것이 뻔해서 묻지 않았다. 이른 봄, 눈도 못 뜨고 사람에게 잡혀왔을 때 이미 녀석의 슬픈 운명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늑대새끼를 굴에서 꺼내오는 일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에게는 일반적인 일 같다. 2013년 봄,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새끼늑대를 훔쳐온 사람을 만났는데 이곳에서는 훔친 새끼를 이용해 늑대를 멀리 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늑대의 피해가 심한 곳에서는 봄철에 늑대 굴을 찾아서는 새끼의 고추를 실로 묶어 소변을 못 보게 한다고 한다. 그러면 소변을 못 보게 된 새끼가 죽겠다고 “낑낑”거리며 울어대는데 그 소리를 들은 어미늑대는 그 곳을 떠나고 다시는 근처에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글쎄, 그런데 그 방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미늑대라면 새끼들 오줌 못 싸게 한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집의 가축만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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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대평원서준 저 | MID 엠아이디
방송계에서 ‘오지의 PD’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방송국 생활 내내 생사를 넘나드는 악전고투를 통해서 세계의 오지만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람, 국내외에서 이미 자연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EBS 프로듀서 서 준이 처음으로 털어 놓는 특별한 아시아 이야기. 2012년 절찬리에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아시아대평원]이 1년 만에 책으로 나온다.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오지 촬영 내내 모래폭풍에 갇히거나 눈 덮인 히말라야의 혹한 속에서도 곱은 손으로도 메모를 잊지 않았고, 메모 한 줄 한 줄에 기억을 덧붙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시리도록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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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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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3년 ‘아웃사이더’라는 곳에서 먼저 출간되었으나,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절판된 바 있다. 아트북스로부터 이 책을 복간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 이미 몇 년 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책을 다시 내게 되었다. 복간을 미룬 이유 중의 하나는 오래전에 쓴 자기의 글을 다시 읽는 데에 따르는 민망함이었다. 이미 13년이나 된 원고들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 보아도 고칠 만한 내용은 별로 없었다. 사소한 오류를 바로잡고, 일부 도판을 교체하고, 참고문헌을 보강한 것을 제외하면, 초판과 내용은 달라진 것이 없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우리 지성계에 이른바 ‘포스트’ 담론이 유행할 때, “모든 책은 유행이 지난 다음에 읽는다”는 발터 베냐민의 격언에 따라 나는 일부러 그 유행에 거리를 두었다. 1999년 유학을 중단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포스트’ 담론의 유행은 어느 정도 지나간 상태. 비로소 베냐민이 말한 유행이 지난 독서를 위한 최적의시간이 된 셈이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탈근대’의 관점에서 미학사를 다시 읽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불어에서 에세이는 ‘시도’라는 뜻을 갖는다.


1장 「미와 에로스」에서는 플라톤의 미학을 ‘존재미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플라톤의 텍스트 『향연』에 등장하는 ‘미의 이데아’는 근대미학에서 주로 존재론이나 인식론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왔다. 그 결과 ‘미의 이데아’가 존재의 해석학이 아니라 존재의 미학에 속한다는 사실은 간단히 망각되었다. 이 에세이는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를 토대로 플라톤의 ‘미의 이데아’가 함축하고 있는 윤리학적 미학의 측면을 드러낸다. 그리스인들에게 ‘미의 이데아’란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끌어올려 완성시켜 나가는 존재미학의 원리였다.

2장 「피그말리온의 꿈」에서는 예술적 진리에 대한 근대미학의 관점을 전복하려 했다. 근대미학에서 예술은 ‘모방’으로, 예술적 진리는 ‘재현의 진리’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원래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는 그저 단순한 모방(imitatio)이 아니라, ‘감각적 현현’ 일반을 가리켰다. 이 장에서는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을 따라 ‘미메시스’의 근원적 의미를 되살리려 했다. 이 경우 예술적 진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의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현시(presentation)’로 다시 정의될 것이다.

3장 「헤라클레스의 돌」은 플라톤의 대화편 『이온』을 중심으로 예술의 ‘영감론’을 되살리려 한다. 플라톤에게 시는 신적 영감의 산물이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시는 테크네, 즉 합리적 규칙에 따른 인간적 제작의 산물로 여겨지게 된다. 이 관점은 훗날 고전주의 미학의 토대가 된다. 낭만주의가 거기에 반기를 들고 예술의 ‘영감론’을 부활시키나, 거기서 ‘영감’은 그저 천재라는 예외적 개인의 재능으로 설명될 뿐이다. 이 장에서는 니체를 따라 오랫동안 잊혔던 예술의 디오니소스적 특성을 다시 부각시키려 했다.

4장 「말의 힘」에서 분석할 텍스트는 위(僞)롱기누스의 ‘숭고론’이다. 버크 이후 근대미학은 미와 함께 숭고를 주요한 미적 범주로 다루었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그 후 숭고에 관한 논의는 주변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리오타르의 에세이 「숭고와 아방가르드」를 통해, ‘숭고’는 후반 현대예술을 특징짓는 주요한 미적 범주로 부활한다. 이 장에서는 ‘숭고’에 관해 쓰인 최초의 문헌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테크네론과 플라톤의 영감론의 충돌을 미와 숭고의 대립으로 재해석하게 될 것이다.

5장 「메갈로프쉬키아」는 견유주의자 디오게네스를 위(僞)롱기누스가 말한 ‘위대한 영혼’의 예로 제시할 것이다. 흔히 서구의 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탈근대의 철학은 이 플라톤주의의 전통을 전복하려 한다. 디오게네스에 주목하는 것은 그가 탈근대의 철학이 등장하기 수천 년 전에 이미 플라톤 철학의 전복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보편자보다 개별자를, 필연성보다 우연성을, 학적 논증보다 예술적 농담을 선호했던 이 “미친 소크라테스”는 탈근대 철학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6장 「죽어가는 것들」은 데카르트의 『정념론』을 통해 근대의 정신주의 철학에 어떻게 신체를 억압해왔는지 분석한다. 신체를 정신의 식민지로 간주한 데카르트의 철학은 ‘이성적 존재’라는 ‘근대인’을 만들어내기 위한 생체공학의 이론적 표현이었다. 앨버트 허쉬먼에 따르면, 정념을 다스리려는 이 생체공학의 결과 현대인은 자본주의적 인간, 즉 이익을 위해 모든 생명활동을 억제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변모했다고 지적한다. 이 장은 이 근대의 기획을 전복하여 ‘내 안의 자연’, 즉 신체를 부활시키려는 작은 이론적 시도다.

데카르트 철학의 미학적 표현은 고전주의 미학이었다. 데카르트는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감각을 불신하고, 정념을 억제하며, 상상력을 배제하라고 가르쳤다. 데카르트의 격률은 ‘진리 충실성’ ‘점잖음’ ‘정직한 인간’과 같은 개념으로 옷을 갈아입은 채 고전주의 예술의 원리가 된다. 하지만 데카르트주의가 배격한 감각, 정념, 상상력은 공교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의 특성과 일치한다. 7장 「옛것과 새것」에서는 17세기에 예술이 이 이성의 독재에 맞서 어떻게 싸웠는지 살펴본다.

8장 「물, 불, 공기, 흙」에서는 롱기누스에서부터 에드먼드 버크를 거쳐 칸트로 이어지는 ‘숭고’의 개념을 살펴보게 된다. 근대미학은 자연의 숭고를 인정했다. 가령 19세기 낭만주의의 ‘파국의 그림들’에서는 자연이 살아 숨을 쉬며 인간을 압도한다. 하지만 근대의 미학은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에 갇혀 자연이 숭고한 이유를 인간정신의 위대함 속에서 찾았다. 이 장은 이러한 근대의 숭고론과 달리 자연의 위대함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새로운 자연 숭고의 개념을 모색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9장 「자연의 결함」에서는 ‘자연미’와 ‘예술미’의 관계에 대한 헤겔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헤겔은 자신의 『미학』에서 자연미에는 결함이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예술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연미에 대한 예술미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곧 자연미에 대한 인공미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의 미학은 근대의 개발 이데올로기의 미학적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그런 근대의 폭력적인 자연 지배의 강박에 맞서 자연의 이질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생태미학의 필요성을 요청하게 된다.

10장 「앙겔루스 노부스」에서 다루는 것은 미학 이론이 아니라 한 장의 그림이다. 파울 클레의 그림 「신천사」.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발터 베냐민은 그의 「역사철학테제」에서 이 그림을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의 엠블럼으로 사용한 바 있다. 이 에세이는 현실사회주의 붕괴로 유토피아의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의 멜랑콜리를 다소 감상적인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이 에세이는 지극히 사적인 체험의 기록으로, 역사주의가 붕괴한 시대에 역사를 대하는 내 자신의 개인적인 다짐을 담고 있다.

이 에세이들을 쓰던 당시만 해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의식하지 못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나의 문제의식은 기존 문헌의 재해석, 그동안 배제됐던 문헌들의 독해, 혹은 주변화한 문헌들의 재조명을 통해 근대미학의 패러다임을 탈근대의 그것으로 전환하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전환은 한마디로 ‘미에서 숭고’라는 모토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1950년대에 미국의 화가 바넷 뉴먼은 “이제까지 서구의 예술은 미에 종속되어 숭고에 대한 열망을 잃어 버렸다”고 말한 바 있다. 뉴먼의 주장은 한 마디로 현대미술의 원리는 ‘미’가 아니라 ‘숭고’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30년 후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뉴먼을 인용하여 숭고가 현대예술의 지배적 미적 범주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미학에서 ‘숭고’의 범주가 1980년대에 이르러 발견된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이상한 일이다. ‘미’를 추구하는 고전예술의 원리는 20세기 초에 이미 종언을 고했기 때문이다. 쓰던 당시에는 명확히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 실린 10편의 에세이는 모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숭고’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리오타르는 ‘숭고’의 개념을 주로 아방가르드 예술에 한정시켰지만, 나는 ‘숭고’의 개념을 고대의 ‘존재미학’과 현대의 ‘생태미학’으로까지 확장시키려 한다. 내게 ‘숭고’란 그저 미를 추구하던 고전주의 예술을 해체한 아방가르드 예술의 원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위대함으로 끌어올리는 존재미학의 원리이자, 나와 이질적인 존재로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생태미학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된 10편의 에세이를 통해 내가 지향하는 ‘확장된 숭고’의 다양한 측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의 전환에 이론적 도움을 준 것은 독일과 프랑스 철학자들의 미학이었다. 이들 탈근대의 미학에 관한 나의 연구는 『현대미학 강의』(2003, 아트북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쓴 『미학 오디세이』 3권(2004, 휴머니스트)에 담겨 있다. 13년 전에 쓴 자기의 글을 다시 읽는 것은, 마치 밤에 쓴 글을 낮에 읽는 것만큼이나 민망한 일이다. 감상적 어조로 쓴 부분은 특히 그러하다. 그 글을 쓰던 청년의 몸속에 지금은 중년의 사내가 들어앉아 있다. 옛글을 다시 읽는 민망함보다 강렬한 것은 그리움이다.

2013년 여름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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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진중권 저 | 아트북스
2003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후 많은 독자들이 복간을 바라왔던 『앙겔루스 노부스』가 도판을 보강하고 오류를 수정하여 재발간되었다. 미학에 관한 ‘에세이’로서, 진중권 특유의 재기 넘치는 문체로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미학사를 탈근대의 관점에서 재검토하며, 그 과정에서 근대미학이 간과했던 해석의 지평을 열어, 미학이 단지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태도이자 방법이 될 수 있는 존재미학으로 나아가는 바탕을 세운다. 책의 제목은 파울 클레의 그림 「앙겔루스 노부스」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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